“검은 연기가 문틈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불이 났다고 외치고 있었고 건물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얼마나 많이 죽었을지 모르겠다. 악몽이었다.”
영국 런던 서북부의 24층짜리 아파트에서 14일(현지시간) 건물 전체가 전소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발생 시각이 새벽 1시인데다 화재경보가 제대로 울리지 않아 잠든 주민들 대다수가 피해를 당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경찰은 이날 새벽 런던 서부의 노스켄싱턴 지역의 그렌펠타워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한 6명이 사망하고 74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부상자 중 20여명은 위중한 상태로 전해졌다.
데이니 코튼 런던 소방청장은 “건물이 크고 복잡한 구조여서 숫자를 확정하기는 힘들다”며 “사망자는 확실히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9년 소방 경력으로도 이와 같은 화재는 난생처음”이라고 덧붙였다.
화재 발생 직후 런던 소방당국은 소방차 45대와 소방관 200명을 출동시켜 화재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불이 번진 속도가 워낙 빨라 정확한 사망자 규모는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고 전체 수색이 완료된 후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에 따르면 아파트 24층 중 20개 층에 120가구가 들어서 있으며 최소 200여명 이상 건물 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BBC와 뉴욕타임스(NYT)는 빌딩 거주민 숫자를 400~600명이라 전하며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날 화재는 건물 2층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불은 삽시간에 24층까지 전체에 번졌다. 한 목격자는 CNN에 “새벽 두 시쯤 전체 빌딩이 화염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실제 빌딩 내 모든 창에서 화염이 쏟아져나왔고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난 정오 이후까지 여전히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한밤중에 발생한 화재로 일부 주민들은 건물 고층부에서 스마트폰 플래시 등을 비추며 구조를 요청했다. 한 여성은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아이를 받아 구조하기도 했다. 일부는 불길을 피해 창 아래로 뛰어내렸다. 인근에 거주하는 알리슨 애반스는 “수 시간 째 건물이 타들어 가고 또 타들어 갔다. 그런 중에도 여전히 빌딩 꼭대기에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그저 지켜봐야 했다. 얼마나 많이 죽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흐느꼈다. 다른 목격자인 압둘 카드리는 새벽 1시 45분께 앰뷸런스의 사이렌을 듣고 이 건물 15층에 사는 친구를 깨웠다. 덕분에 친구 가족은 무사했지만 화염을 빠져나온 친구는 한동안 말조차 잇지 못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 1974년에 준공된 이 아파트는 2016년 여름 중앙난방, 단열 효과 개선 등에 초점을 둔 4년여간의 리노베이션을 마무리했다. 이후 외벽에는 단열 효과를 지닌 알루미늄 합성 피복이 부착됐다. 일각에서는 저층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삽시간에 고층까지 번진 이유로 알루미늄 합성 피복을 지목하고 있다. 당시 리노베이션을 담당한 건축업체 라이던은 성명을 내고 “안전 및 보건 기준을 모두 준수했다”며 “당국의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건물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번 참사의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비드 콜린스 그렌펠타워 커뮤니티협회장은 CNN에 “우리의 경고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런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렌펠타워는 2015년 “복합건물인 아파트에 불이 날 경우 집안으로 불길이 들어오지 않는 한 집 안에 머무르라”는 내용의 화재 대응 지침을 입주민들에게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화재 경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생존자들은 전했다. 건물 소유주도 지난해 화재안전조사를 실시해 복수의 조정명령을 내렸지만 관리업체는 여전히 숙고 중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화재 직후 응급기관의 특별조치가 필요한 중대 사고를 선포하고 구호에 총력을 쏟을 것을 지시했다. 또 화재 진압 이후 건물의 안전관리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접수된 한국인 피해는 없다”며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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