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주의자인 미국골프협회(USGA)로서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남자골프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제117회 US 오픈 1라운드를 마친 브랜트 스네데커(미국)는 이렇게 말했다. USGA는 US 오픈의 코스를 세계에서 가장 어렵게 조성하는 것으로 악명 높지만 올해 첫날 성적이 기록적으로 좋게 나오자 비꽈 한 말이다. 2언더파 공동 18위에 오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통산 8승의 스네데커는 “타수를 더 줄이지 못한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16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에린의 에린힐스 골프장(파72·7,845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는 44명이 언더파 스코어를 써냈는데 이는 지난 1990년 대회 때 나왔던 39명을 넘어선 US 오픈 첫날 최다 기록이다. 단독 선두에 나선 리키 파울러(미국)의 7언더파 65타는 대회 첫날 최다 언더파 타이다.
당초 에린힐스는 러프 지역에 무릎까지 오는 페스큐(벼과의 다년생 풀)가 식재돼 선수들을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야수’보다는 페스큐만 피하면 버디 사냥이 어렵지 않은 ‘순한 양’에 가까워 보였다. 미국 PGA 투어 홈페이지는 페어웨이 넓이가 60야드(약 55m)에 달해 드라이버 샷으로 장타를 시도하는 데 무리가 없고 볼이 떨어진 뒤 구르는 거리가 길어 코스의 체감 길이가 수치보다 짧다고 분석했다. 최근 내린 비로 그린이 부드러워져 아이언 샷으로 볼을 세우기도 수월했다.
파울러는 버디만 7개를 쓸어담아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에 도전할 발판을 만들었다. PGA 투어 통산 4승을 거둔 파울러는 페어웨이를 두 차례 놓쳤지만 깊은 러프에 빠지지 않으면서 보기를 없앨 수 있었고 4개의 파5홀에서 모두 버디를 뽑아낼 만큼 샷이 안정적이었다. 폴 케이시(잉글랜드)와 잔더 셔펠레(미국)가 1타 차 공동 2위(6언더파)로 추격했고 브룩스 켑카와 브라이언 하먼(이상 미국), 토미 플릿우드(잉글랜드) 등 3명이 공동 4위(5언더파)에 자리했다. 파울러는 “US 오픈에서 스트레스 없는 라운드를 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매우 기분 좋게 게임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영건’ 김시우(22·CJ대한통운)도 러프를 잘 피하며 3언더파를 기록, 선두와 4타 차 공동 11위로 순항을 시작했다. 지난달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시우는 2번홀(파4)에서 2m 버디를 잡아내는 등 5개의 버디(보기 2개)를 골라냈다. 대회 개막에 앞서 페스큐 러프의 상태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화제가 됐던 재미교포 케빈 나(34)는 4타를 줄여 공동 7위에 올랐다.
페스큐 러프의 덫에 걸려든 정상급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은 3오버파 공동 102위로 첫날을 마쳤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64.3%에 그치면서 버디는 1개밖에 잡지 못했고 보기 2개에다 14번홀(파5)에서는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코스에 자신감을 드러냈던 세계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6오버파 공동 143위로 부진했고 세계 3위 제이슨 데이(호주)는 7오버파로 156명 중 공동 151위까지 밀려나 컷오프 위기에 몰렸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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