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이뤄낸 쿠바와의 역사적인 화해 정책에 결국 제동을 걸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양국의 국교 수립 후 급물살을 탔던 쿠바 기업들과의 거래와 쿠바 여행에 대한 규제는 대폭 강화된다. 이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파리기후협정 폐기에 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유산 지우기’ 행보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쿠바 수도 아바나의 대사관을 유지하고 항공편 운항도 지속하기로 하는 등 기존 정책을 전면 철회하는 데까지 내닫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AP통신과 블룸버그 등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쿠바 망명자들이 많은 마이애미에서 쿠바 경제에 영향력이 큰 군(軍) 관련 기업들과의 거래 금지 및 여행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새 쿠바 정책을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15일 사전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대(對)쿠바 정책 수정 계획을 밝혔다. 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쿠바 정책을 줄곧 비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쿠바 정부에 인권개선 의지가 없으면 양국의 해빙 무드를 종식시키겠다고 강조해왔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쿠바 공산 정권이 여전히 인권탄압을 자행하며 적잖은 정치범을 양산하고 있다고 보고 쿠바 군부 또는 정보당국과 연계된 국영기업과 미국인 사이의 거래를 금지하기로 했다. 대표적 규제 대상은 쿠바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에사(GAESA)’다. 가에사는 수십 개 자회사를 통해 쿠바 내 모든 소매체인점과 57개 호텔, 버스회사와 식당 등을 소유·운영하며 쿠바 경제의 약 40%를 차지하는 국영그룹으로 제재조치가 실행되면 미·쿠바 간 증가 추세를 보이던 교역과 상업 활동이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가 입수한 수정 쿠바 정책 요약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카스트로 공산 정권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지원을 뒤집고 대신 미국과 쿠바의 일반 국민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쿠바 여행 관련 규제도 강화된다. 미국은 가족방문이나 교육활동 등 법으로 정한 12가지 목적 중 하나에 부합하는 경우에 한해 쿠바 여행을 허용하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 시절 양국이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후 심사를 크게 완화해 적용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행 심사를 엄격히 적용하고 미국인의 쿠바 여행은 미국 기업이 조직한 단체여행에 참여하는 형태로만 승인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 확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대쿠바 정책은 교류 확대를 전면 중단하거나 당초 우려됐던 대로 양국 관계를 오바마 전 정권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수준은 아니다. 미 정부는 외교관계 재개로 2015년 8월 아바나에 재개설한 미국대사관을 존치하기로 했으며 지난해 2월 취항해 노선이 늘고 있는 정기 항공편 운항도 유지하기로 했다. 크루즈 여객선도 계속 운영되며 쿠바를 방문한 미국인에게 무제한으로 허용된 쿠바산 시가와 럼주 반입에 대해서도 별도 규제는 가해지지 않는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정된 쿠바 정책을 발표한 후에도 재무부가 세부 조치를 변경·정리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당분간은 미국인의 쿠바 개별 여행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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