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5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된 런던 24층 아파트 그린펠 타워 현장을 찾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뒤늦은 대응으로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16일(현지시간) 가디언·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화재 현장 인근의 교회를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그가 교회 안에서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앞서 그가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가 실종자 가족이나 이재민들은 면담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비난이 거세진 후에 다시 방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주민은 메이 총리를 향해 “이제 와서 여기에서 뭐하자는 건가?”라며 “사람들은 사흘 전에 삶을 잃었다”고 항의했다. 교회 주변에 모인 이들이 관용차를 타고 떠나는 메이 총리에게 “겁쟁이”라거나 “부끄러운 줄 알라”고 질책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호에 동원된 경찰들이 분노하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여 논란을 키웠다. 그는 정부가 화재 참사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끔찍한 참사’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만 교회에서 돌아온 이후 성명을 내고 이번 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500만파운드(약 72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때늦은 정부의 대응에 화재 이후 런던 곳곳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그렌펠 타워가 위치한 켄싱턴,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 스트리트 등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시위대는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일부는 ‘메이는 물러나라’고 소리치며 보수당 정권의 실책이 참사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이날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화재 현장을 찾았지만 주민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날 메이 총리에 앞서 현장 인근의 스포츠센터를 방문한 여왕은 그렌펠 타워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 등을 만나 인간적인 위로를 전해 호평을 받았다. 여왕은 “시험대에 오른 영국이 역경에 맞서 아주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우리는 슬픔 속에서 한마음이 됐다. 또 어떠한 두려움과 선호 없이 부상과 피해로부터 삶을 재건하려는 이들을 지원하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 경찰·소방당국은 공공 임대아파트 그린펠 타워 화재로 최소 58명이 사망했으며, 최대 100명 이상으로 희생자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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