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은 곧 전봉준(1855~1895)을 의미할 만큼 그의 역할은 핵심이다. 원래 그는 농민이자 훈장 등을 하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 유지였다. 지난 1890년대 초에 동학에 들어갔고 곧 지역책임자가 된다. 그가 전 세계를 뒤흔든 이 혁명의 중심이 된 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탄압 때문이었다. 고부민란이나 재봉기, 일본군과의 전투 등은 모두 민중의 뜻에 반한 왕조권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진행된 것이다. 당시에는 대부분 실패라고 인식했으나 결과적으로 민주와 자주·평등 사상을 민중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계기가 됐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은 정읍 황토현에 있는 그의 동상이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