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2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가운데 한미관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등 핵심 현안에 대해 연일 반대 방향의 목소리를 내면서 정상회담이 매끄럽게 전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마디로 현시점에서 한미 정상회담 전망은 시계 제로다.
文대통령 ‘김정은 만날수 있다’ 발언에 美정가 냉기류
트럼프 “웜비어 사망은 치욕” 독자 대북 압박 만지작
정상회담서 北 대응 방향 놓고 충돌 가능성 고조
사드에 FTA 엮어 압박땐 文대통령 돌파 힘들수도
◇문 대통령 “조건 맞으면 평양 가겠다”=문 대통령은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20일자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조건들이 맞는다면 나는 여전히 좋은 생각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15일 6·15 남북 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이미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표시한 바 있지만 평양에 가겠다는 뜻을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워싱턴 정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특히 북한에 억류됐다 17개월 만에 혼수 상태로 가족의 품에 돌아온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끝내 사망하면서 현재 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증오로 들끓고 있다. 외교가의 한 고위관계자는 “특히 미국 의회가 북한에 대해 대단히 강경한 입장을 나타낼 것이어서 문 대통령의 이번 ‘평양’ 발언을 좋게 보지 않는 기류가 워싱턴에 흐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결정은 전임 정부가 한 것이지만 그 결정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명확히 했다”면서도 “환경영향평가를 포함한 정당한 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를 배치하되 국내법을 준수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불법적인 형태로 사드를 배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를 지키는 데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미국 측이 이를 ‘시간끌기’로 오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8일 주한미군 사드 배치 지연 문제를 보고받고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사드를 조속히 배치하고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문제를 엮어 압박할 경우 문 대통령이 이를 돌파하기가 상당히 힘들 수 있다.
◇트럼프 “웜비어 사망은 완전한 치욕”=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웜비어 사망에 대해 “완전히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절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날 북한을 “잔혹한 정권”이라고 지칭한 데 이어 이날 이번 사건을 ‘미국의 치욕’으로 규정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손보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남북 대화 추진 방침을 응원할 리는 없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북한을 보다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제안할 가능성이 크고 문 대통령 또한 원론적인 수준에서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 문제와 관련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의 지원 노력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런 노력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고 이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미국의 기존 전략은 중국의 도움을 받아 북한을 제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웜비어 사망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 생각을 바꿔 독자적인 북한 압박을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의 추가적인 독자 대북 압박 수단은 크게 두 가지, 북한과 거래하는 3국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보이콧과 군사적인 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최근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배치를 축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게 외교가의 일반적인 견해다. 북한에 대한 워싱턴 조야의 입장이 대단히 강경해진 상황에서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얘기한 것은 그 진의와 관계없이 한미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에 대해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되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대북 정책 기조를 확정한 바 있다. 김정은과 “영광스럽게 만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올드 스토리’가 된 분위기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만날 가능성은 한층 멀어졌다”고 밝혔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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