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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 폐지 논란]입닫은 정부에 '교육 혼란'…충분한 논의 거쳐 백년대계 세워야

구체적 이행 방안 못내놔…부모들 반발

'다양성 vs 서열화' 찬반 논란은 가열

학습質 개선에 초점…사회적 합의를

서울시 자율형사립고 학부모 모임인 ‘자사고 학부모연합회’ 관계자들이 22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자사고 폐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11시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서울의 대표적 자율형사립고인 이곳에 학부모 30여명이 모였다. ‘자사고학부모연합회’ 회원인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진영 논리를 앞세운 자사고 폐지 정책을 당장 중단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의 주범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외고교장협의회도 이날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에서 외고 폐지에 반대하기 위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교육 현장 혼란만 부추긴 자사·외고 폐지 논란=자사·외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교육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발간한 공약집에서 ‘복잡한 고교 체제 단순화’를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일반·특목·마이스터·특성화·자율형사립·자율형공립고 등으로 구분된 고교 체제 단순화 △국제·자사·외고의 일반고 전환 △일반고와 특목·자사고 고교입시 동시 실시 등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지난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고교 체제 단순화’의 방법으로 “단기적으로는 5년 단위 운영 성가 평가를 통해 기준 미달 대상 학교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국제·자사·외고의 일반고 전환과 입시를 동시 실시한다”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0여일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정책 수장인 교육부 장관 인선이 늦어지는데다 국정기획위도 아무런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교육자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일부 교육감의 설레발 발언도 교육 현장의 혼란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재지정 취소를 통해 자사고·외고를 폐지하겠다”고 포문을 열자 조희연 서울교육감도 이에 질세라 동참했다. 더구나 서울교육청은 오는 28일 5개 외고·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사·외고 폐지를 들고 나왔으니 해당 학교와 학부모들이 “결론 정해놓고 하는 재지정 평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다양성 vs 서열화’ 찬반 논란 팽팽=자사고·외고 폐지 논란은 보수와 진보 진영 간 해묵은 논쟁과 연결돼 있다. 교육의 ‘자유’와 ‘형평성’ 중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둬야 하느냐의 문제다. 폐지에 찬성하는 측은 자사·외고가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애초 설립 목적과 달리 사교육과 입시교육만 부추기고 출신 학교에 따라 아이들을 서열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사·외고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사교육을 받아야 하고 입학 후에는 명문대 입시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초등학교부터 자사·외고 입시를 준비하고 고교 때부터 아이들을 부모의 소득에 따라 갈라놓는 게 정상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자사·외고가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폐지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좋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더구나 대학이 서열화된 상황에서 좋은 고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런 욕구는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사·외고 폐지가 강남 8학군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들 학교가 사라지면 명문고와 유명 학원, 부유층이 밀집한 강남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자사·외고의 존재 덕분에 집값 비싼 강남에 진출하지 않고도 교육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이들 학교가 폐지되면 강남 진출이 가능한 부유층만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백년대계’ 공론화로 신중히 접근해야=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 교육부 장관과 진보 교육감들이 자사·외고 폐지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대대적인 반발에 직면해 아무런 진전도 이뤄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년 단위 운영 평가에서 일괄적으로 기준미달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자사·외고를 폐지하면 각종 소송에 휘말려 시간만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조희연 서울교육감도 취임 초 이런 방식으로 자사·외고 폐지를 밀어붙이다 결국 백기를 든 전례가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당장 자사고·외고를 폐지하기보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인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거친 뒤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정책위원장도 “자사·외고 폐지 문제는 대학 입시와 대학 서열화, 고교학점제 등 다양한 문제와 얽혀 있다”며 “무조건 폐지하기보다는 일반고와 동시에 입시를 실시해 서열화를 완화하는 등 보완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의 자사·외고 폐지 논란은 진영 간 이념 대결 내지는 이해 당사자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습환경을 개선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능현·신다은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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