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경영감각으로 소비시장을 장악하며 글로벌 유통의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또 한번의 파격 행보로 이목을 끌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2일(현지시간) 베저스 CEO가 지난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지금 바로 인류를 도울 수 있는 자선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한 후 순식간에 4만2,000건이 넘는 답글을 받았다고 전했다. 세계 각지에서 쏟아진 자선사업 제안 가운데는 의료·교육·융자탕감 등 전통적 사업 외에 “문을 닫게 된 시카고의 가죽박물관을 도와달라”거나 “종영한 TV 프로그램을 되돌려달라”는 이색적인 요구까지 있었다. 팝스타 마돈나는 제조업 불황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함께 자선활동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단순히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자선 형태를 넘어 집단지성을 활용하려는 그의 자선 아이디어 ‘크라우드소싱’ 행보는 지난 20여년 동안 기존의 사업영역을 깨며 ‘판’을 흔들어온 베저스의 ‘게임체인저’로서의 면모가 자선사업 분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지난 1994년 설립한 아마존은 창립 초기 전자책 사업에 집중했지만 1998년 영화평론 사이트인 IMDB, 데이터마이닝 업체 정글리를 인수하고 이듬해에는 데이터 분석회사 알렉사인터넷을 품에 안으며 빠르게 영역을 확장했다. 당시 주력사업 영역을 벗어난 인수합병(M&A)이었지만 이는 이후 고품질 동영상 서비스인 ‘아마존프라임’, AI·로봇 사업인 ‘아마존로보틱스’, 클라우드컴퓨팅인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기반이 됐다.
베저스의 공격적 투자에 대해 일각에서는 단순한 ‘문어발 확장’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차근차근 ‘플랫폼’을 구축해온 그의 전략은 어느덧 아마존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베저스 자신을 세계 최고 부호 대열에 올려놓았다. 전자상거래 아마존과 AWS는 모두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의 특성이 강해 기업 인수로 꾸준히 소매상(AWS는 기업 고객)과 이용자를 늘리는 ‘선순환 모델’로서 장기적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최근 식료품 사업과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 역시 이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존은 2007년 인터넷으로 식료품을 주문하면 배달해주는 ‘아마존프레시’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식료품 2시간 배달 시스템’을 선보인 데 이어 16일에는 137억달러(약 15조5,000억원) 규모의 식품유통 업체 홀푸드까지 집어삼켰다. 미국 내 450개에 달하는 홀푸드 매장은 아마존프레시와 연계돼 ‘식료품 기지’로서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명실상부한 ‘식료품 유통 플랫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존이 개발한 AI 비서 기계인 알렉사도 개인 개발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해 ‘AI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베저스가 이처럼 ‘플랫폼’에 집중하자 그가 회사 이름을 ‘아마존’이라는 강 이름으로 지은 이유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야망을 담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아마존 강’처럼 각종 플랫폼을 구축·흡수해가며 영향력을 키우는 행보에 일각에서는 ‘독점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판’을 짜는 베저스의 전략이 기존 사업영역을 파괴하며 모든 소비영역을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아마존은 19세기의 철도를 21세기 버전으로 바꿔놓은 모습”이라며 철도사업자처럼 아마존도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을 상대로 독점적 가격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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