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전에 영국으로 들어온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은 EU와 결별한 후에도 영국 국민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EU는 그마저도 불충분하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AP통신은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23일(현지시간) EU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메이 총리의 제안에 대해 “기대 수준보다 이하”라며 “우리는 EU와 영국 시민들의 완벽한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제안은 상황을 안 좋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메이 총리는 전날 정상회의 만찬에서 “현재 영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EU 회원국 국민 중 누구에게도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오는 2019년 3월에 영국을 떠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공정하고 신중한 제안으로 영국에 정착한 EU 국민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확실성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의 발표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에 거주하는 EU 회원국 국민에게 자국 국민과 동일한 교육·건강보험·연금 등의 혜택을 누릴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앞으로 정할 기준일까지 영국에서 5년간 거주한 사람에게 ‘정착지위(settled status)’를 부여할 방침이다. 또 거주 기간이 5년 미만이라도 이미 영국에 입국한 사람들은 정착지위 확보에 필요한 5년의 기간을 채울 때까지 체류가 허용된다. 이와 함께 영국은 특정 기준일 이후 자국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도 최대 2년의 ‘특혜기간’을 부여해 노동허가와 같은 형태의 이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메이 총리의 제안은 영국에 거주하는 EU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회원국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임에도 EU는 ‘앞으로 정할 기준일’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고압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브렉시트 협상이 공회전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영국과 EU가 협상의 초기에 문제를 풀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양측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메이 총리는 투스크 의장의 반대 의사 발표에 대해 “공평하고 진지한 제안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메이 총리의 입지 역시 더욱 불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텔레그래프는 브렉시트 기조 수정을 원하는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영국의 EU 단일시장 탈퇴 방침을 수정하지 않은 여왕 연설을 거부할지를 두고 내부 논의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홍용·변재현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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