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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열’ 이준익 감독...이번에도 역사를 바로 썼다

“나는 안티히어로즘...거시기·장생이 대표적”

박열은 곧, 반복되는 역사 속 우리들의 투영이다.

매 작품에 혼을 싣지 않았으랴 싶지만, 이번 영화 ‘박열’은 이준익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인생작’이라 자부할 수 있다. 언뜻 쉬이 만들어졌을 법한 직선적인 캐릭터 ‘박열’은 생각보다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길었다. 이준익 감독이 2005년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탐색하다 보니 발견한 인물이 박열이었고, 그 때부터 구상을 시작했다. 무려 약 20년간의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야심작이다.

이준익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박열’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며 만난 이준익 감독은 스스로를 ‘파괴자’라 지칭한 매력적인 인물 박열(이제훈),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에 여전히 깊이 빠져 열변을 토했다. 이쯤 되니 그에게 ‘박열과 후미코의 1호 팬’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감독이기 이전, 인류와 역사를 뜨겁게 논하고자 했던 이준익은 박열만큼이나 열정적이었다.

“20년쯤 전에 ‘아나키스트’를 준비하면서 한국 독립 운동사의 자료를 보다가 박열을 알게 됐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독립 운동가의 수가 수천 명은 될 것이다. 자료들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분들이 많았다. 그 중에 박열이 갖고 있는 특이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도쿄에서 자리 잡은 많은 이념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시아에서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들인 게 일본이었다. 서구의 근대사상이 일본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제국주의 매뉴얼’을 답습했다.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상과 행동에서 아나키즘이 태동했다. 박열은 일본이 제국주의로 흐를 때, 반제국주의로 민중사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사람이다.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이 알게 된 박열의 탄생기는 일제강점기 일본내부의 변화로부터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와 맞물린 이 때, 일본은 서구 문물에 매료됐고 아시아 최강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삼는 기형태로 더욱 가혹하게 우리 민족을 거느리려 했다. 1923년 발생한 간토(관동)대지진에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을 대학살하는 관동대학살을 가한 후 이를 은폐하려 하자 폭압적이고 잔인한 만행에 반발의 운동이 일었다.

“불령사에는 조선인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인도 있었다. 불령사는 탈 국가, 탈 민족적 단체였다. 과거 신채호, 이회영, 김원봉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박열은 탈 민족적 아나키스트였다. 영화 속에서는 그걸 증명하는 게 가네코 후미코와의 관계성으로 드러난다. 박열은 일본의 대법원 법정에서 천황제를 반대하고, 3.1 운동을 탄압한 제국주의의 폭압을 반대하는 주장을 재판장에서 선언한다. 무엇보다 ‘박열’에는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 평전의 내용이 대본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만큼 이 책이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했다. 가능하면 이 책을 먼저 본 후에 영화를 보기 추천한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천지 차이가 날 것이다.”

이준익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이날 이준익 감독 앞에는 평전 ‘가네코 후미코’와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가 놓여 있었다. ‘박열’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네코 후미코라는 일본 여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였다. 영화의 제목은 ‘박열’이지만 사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동질의 사상, 더 나아가 가네코 후미코로 비롯된 박열을 이야기 한다. 한 마디로 ‘박열’은 가네코 후미코를 빼 놓고 절대 논할 수 없다. 이는 영화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도쿄지방재판소 예심 제5호 조사실에서 촬영한 ‘괴사진’으로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박열과 후미코가 서로 겹쳐 앉아있고, 심지어 박열은 ‘보란 듯이’ 가네코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다. 이 장면은 도발적인 ‘박열’의 방점이 된다.

“그런 인물을 20년 전에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자료가 풍부하지 않았다. 몇 가지 인상적인 것 중에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찍은 사진이 있더라. 그 사진을 어떻게 찍게 됐으며, 왜 찍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후에 일본 사회에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이 책(가네코 후미코)에 나온다. 우리는 그 동안 ‘반일 감정’의 프레임 안에서 일제 강점기와 일본의 제국주의를 바라봤다. 관점의 틀을 넓힐 수 있는 인물이 박열이더라. 일본 쪽에서 바라보는 조선인 아나키스트 중에 박열이 있었다. 그 동안 영화들을 만들며 실력이 늘고서 ‘박열’을 찍기 바랐다. 그 과정에서 ‘동주’를 먼저 살짝 찍어본 것도 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가장 궁금하다.”

‘박열’이 지금 시점에 더욱 의미 있는 건, 여전히 혼란스런 현 사회에도 통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고구마’를 먹은 듯한 상황이 수시로 쏟아지는 판국에 이런 ‘사이다 캐릭터’가 무척이나 반갑다. 어쩌면 사회에서 각광 받는 장르와 현상이 아나키즘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박열이 가진 기질과 민중 사회에 스며든 사상이 아나키즘으로 일치한다고 본다. 당시에는 아나키즘이 소수만의 특별한 사상이었다. 지금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아나키스트다. 개인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사는 게 아나키스트라 생각한다. 이미 아나키즘 세상이 도래했다. 조선의 광대성, ‘왕의 남자’ 장생의 기질부터 래퍼가 스웨그를 표현하는 것까지 모두 연결된다. 지금은 힙합이 젊은이들에게 주목받는 장르이지만, 내가 어릴 때는 그게(유사 아나키즘) 록이었다. 6~70년대의 록은 지금의 힙합보다 더욱 저항적이었다. 힙합과 락은 본질이 같다. 60년대 팝 가수 밥 딜런도 아나키한 노래를 불렀다. 오죽하면 노벨문학상을 줬겠느냐. 밥 딜런의 노래는 미국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정신이다.”

이준익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이준익 감독은 아나키즘이 탄생할 수밖에 없던 배경을 사회 계층화 문제에서 바라봤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계층화 되어왔고, 소수의 상위 계층이 그들의 절대적 영역을 누리기 위해 범하는 행동에서 당연히 반발하는 과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게 앞으로 민중의 역사로 이어질 것이다. 비주류 역사로 광대와 힙합이 있다. 그것을 이해할 때만이 자신의 삶의 존엄성을 자각할 수 있겠다. 주류에만 대입하면 실패감을 맛볼 것이다. 집단 사회의 상부는 자기 계층을 유지하기 위해 아래층을 탄압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계속 그래왔다. 원래 세상은 부조리하다. 그걸 인정하자. 수천 년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걸 탓하는 것은 세상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법정신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외칠 권리가 있다’고 했듯이, 아나키는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기존에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에서 ‘모범적이고 선한 독립운동가’를 찬양해왔다. 하지만 때깔이 확연하게 다른 ‘박열’은 세상을 향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고 외치는 삐딱하고 과격한 투쟁가 박열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나는 안티히어로즘(반영웅주의)이다. ‘황산벌’의 거시기, ‘왕의 남자’의 장생이 대표적이다. 히어로즘은 권선징악이라는 틀 안에서 그걸 미화 시킨 것이라 본다. 멋있으면 다 히어로다? 그건 정확히 개념을 이해를 하지 않는 것이라 본다. 아나키즘은 지금의 페미니즘과 아주 닮아있다. 동물운동가,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게 결코 권력을 잡자는 건 아니다. 촛불도 그렇게 ‘저항’하는 데 의미를 둘 뿐이다.”

“아나키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하고 봐야 한다. 일본인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닐 터다. ‘반일 감정’이 있으면 ‘반일 이성’도 있을 거다. 인간은 감성과 이성을 가진 동물인데, 박열은 이성을 가지고 일본을 대한 인물이다. 감성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법 체계를 따르면서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그처럼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똑같다. 45억 6천 만 년이 되는 지구의 수명에서 태양이 계속 도는 동안 인간은 세대를 이으며 보초교대를 하고 간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진화한다는 말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다.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의 국민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아나키 사상도 그렇다. 인간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할 자유가 있다. 그것은 곧 ‘평등사상’이자 공자의 ‘대동사상’이기도 하다. 그것이 곧 ‘민주주의’다.”

일본의 제국주의부터 시작해 박열의 사상, 그리고 인류가 추구하는 평등까지 조목조목 짚는 감독을 보고 있자니 박열과 닮아 있었다. “내가 박열을 목표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창작자는 무의식의 고백을 한다.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은 그 프레임 안에서 고백하게 되어있다.”

이준익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그 어느 작품보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익숙하지 않은 역사 속 인물을 끄집어내 보이는 과정이 녹록치는 않았다. 그 속에서 보다 완성도 높은 고증은 필수였다. 실제 발행된 일본 신문의 등장과 배경은 기본이요, ‘박열’ 속 인물들은 웬만한 작품을 뛰어 넘을 정도로 완벽한 일본어 구사를 한다.

“박열과 후미코의 대역사건을 담당하는 예심판사 다테마스 역을 맡은 김준한 배우는 오디션에서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는 걸 보고 캐스팅했다. ‘박열’은 무엇보다 확실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중국 사람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어를 쓰면 그렇게 어설퍼 보이지 않던가. 특히 후미코는 일본말을 잘 하면서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배우였어야 했다. 그래야 감정 이입이 잘 될 것 같았다. 이번 작품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연출했다. 스태프들이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써줬다. 팩트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을 직접 찍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완벽한 ‘박열’을 탄생시키기 위해 ‘동주’를 프리퀄 아닌 프리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주’와 ‘박열’은 꽤나 닮아있다. 송몽규와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발견, 윤동주에 영향을 끼친 송몽규, 박열에 영향을 끼친 가네코 후미코의 관계성 등이다.

“‘박열’을 만들기 위해 ‘동주’를 만든 것도 있다. ‘박열’은 함부로 찍으면 안 되는 영화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까다롭고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일본 내각도 나오고 ‘천황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본 국수주의자가 보면 불 지르고 싶은 장면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일본의 양심을 믿는다. 송몽규를 몰랐을 때 사람들은 윤동주를 온전히 알 수 없었을 거다. 송몽규를 빼고 윤동주를 이야기할 수 없듯, 박열도 가네코 후미코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박열이 주인공 같지만 사실상 후미코가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열’은 관점이 두 개인 영화다. 두 관점이 두 주인공과 맞물려서 확장되는 영화다.”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평양성’(2011) ‘사도’(2015) ‘동주’(2016)로 많은 시대극을 선보여왔지만, 이번에는 확연히 다르다. 한껏 성나있고 뜨겁고 파격적이다. 그러면서 본연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준익 감독은 역사를 바로 썼다.

“영화는 개봉하는 순간 돈 내고 시간 내고 보는 관객의 몫이 된다. 영화의 관점을 강요하는 건 불법이라고 본다. 이 영화 또한 어떤 자리매김이 되겠다. ‘사도’, ‘동주’, ‘소원’처럼 말이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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