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제 주된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이, 어떤 관심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노홍인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노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가 삼성물산 합병에 개입했음을 입증하고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증인석에 세운 인물이지만 특검의 기대를 저버렸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21일 “사실관계를 망라하는 신문은 이제 필요없다”며 “삼성 현안에 대한 청와대 영향력이나 삼성의 개입 여부를 밝히라”고 특검을 압박했다. 이 부회장 재판이 30회 이상 진행되면서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특검 공언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검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을 대가로 삼성이 박 전 대통령에 현안 해결을 청탁했고 청와대가 들어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까지 밝혀진 사실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시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고, 대통령이 삼성에 요구한 승마 유망주 지원이 사실상 정씨 단독 지원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불과하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주요 전직 고위 인사들은 청와대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물산 합병 뒤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이 매각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 수를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준 조치는 공정위의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도 “박 전 대통령은 삼성물산 합병에 찬·반 지시를 한 적 없다”고 증언했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 합병 당시 회사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에 대해 “청와대가 관심이 너무 없어 서운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검은 삼성의 승마 지원이 정씨만을 위해 기획한 ‘뇌물’이고 말과 차량을 빌려주는 것처럼 꾸몄지만 실제로는 사줬다고 봤다. 하지만 최씨 측근이자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지낸 박원오씨는 “삼성은 정씨 말고도 다른 승마 유망주를 선발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최씨가 개입하며) 처음 계약에서 변질됐다”고 증언했다. 삼성 변호인단은 지난 20일 정씨가 탔던 말 중 ‘라우싱’과 ‘비타나’의 소유권을 삼성이 덴마크 말 중개인에게서 돌려받았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삼성이 말을 사준 게 아니라 빌려줬다는 증거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언급을 무리하게 확대 해석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홍 전 본부장과 만나 “(합병 실패 때) 플랜B는 없다”고 말한 사실을 ‘합병 찬성 청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23일 재판에서 “플랜B가 없다는 얘기는 2015년 6월30일 삼성물산 경영진이 언론·증권사 간담회에서도 말했다”며 “삼성의 공식 입장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특검은 오는 28일 최씨를 이 부회장과 대면시킬 예정이다. 그러나 최씨는 삼성의 현안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고 철저히 발뺌하고 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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