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중압감에 짓눌린 듯 납작하거나 꽉 찬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치인 현대인의 고달픔처럼 길게 늘어진 사람들. 왜곡된 인물상으로 유명한 조각가 이환권(43)의 작품은 하나같이 그렇다.
강남구 예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환권 개인전의 이번 명칭은 ‘예기치 않은 만남’이다. 전시 작품들을 통한 ‘예기치 않은 만남’은 낯설고 놀랍기까지 하다. 웅덩이에 비친 인물을 조각으로 만든 신작 ‘퍼들(Puddle)’ 시리즈 등 신작 30여 점은 어딘지 모르게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현대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환권은 “브라운관 TV에서 영화를 볼 때 비율이 맞지 않아 찌부러진 화면을 보며 화면 속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면서 “왜곡은 형식적인 긴장감을 주며 이 형식적인 긴장감이 현대인과 닮았다”고 말했다.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원통형으로 표현한 신작 ‘통일’ 또한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남녀의 시선이 달라진다. 남녀가 서로 웃으며 수줍게 손을 잡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바라보는 여자의 눈길을 남자가 애써 외면하는 듯하기도 하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둘 사이의 관계가 달라지는 모습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이환권의 조각은 지극히 현실 중심적이며 모두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통일’의 경우 북에서 이주한 남자와 대한민국 여자의 결혼 생활을 보며 만든 작품이다. 이환권은 “왜곡을 더 크게 하면 더 큰 자극이 오겠지만, 이는 값싼 비유일 뿐”이라며 “미술은 감성적인 만큼 마음이 움직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신작들은 납작하거나 길죽하게 높이를 변형하던 기존 ‘형태의 왜곡’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왜곡’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퍼들’은 물웅덩이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비치는 주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홀로 외로이 남겨진 그림자의 형상에 대해 김종길 평론가는 “없는 현실의 실존을 찾아야 하는 난제에 봉착하도록 만들었다”고 평했다. 실제 작품 아래에는 ‘그림자의 그림자’가 생겨 신비감을 더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방황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결국 물웅덩이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비가 갰다는 뜻”이라 설명했다.
한국 구상조각대전과 야외조각 공모전 등에서 수상했던 이환권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 10배를 웃도는 가격에 작품이 낙찰되며 유명세를 탔다. 최근에는 조각 분야의 권위있는 미술상인 제 28회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7월 15일까지.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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