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용불안은 개인에게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각종 선거에서 일자리 창출은 단골 메뉴가 된 지 벌써 오래다. 새 정부는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추경을 편성하려는 등 취업률 제고를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청년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 미래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다. 장년층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면 현재의 삶은 불안해지고 미래의 삶은 암울해진다.
취업을 못하거나 직장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남이 자신을 고용하는 취업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고용하는 자영업으로 가게 된다. 그 결과 장년층만이 아니라 최근 청년층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열거나 편의점 점주로 새 출발을 시도하고 있다. 어려운 취업의 문이 열리기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영업 시도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하루걸러 거리마다 새로운 편의점이 들어서고 대학가에는 학기마다 업종을 바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선보인다. 소비자의 선택을 다양하게 하고 접근권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한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편의점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흔히 새 점포가 문을 열면 3분의1은 살아남지만 3분의2가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본사 입장에서 보면 한 지역의 가맹점이 망하더라도 새로운 점주가 나오므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청년층과 장년층이 인생의 벼랑에 몰리거나 재도전의 결의로 프랜차이즈 업종에 뛰어들었다가 망한다면 절망감을 널리 퍼뜨리는 심각한 사회현상을 낳게 된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종 중 일부 경영진이 본사 광고비를 가맹점에 떠넘기거나 회장의 자서전을 가맹점에서 대량 구입하도록 강매했다는 혐의가 제기됐다. 또 가맹점을 탈퇴하고 새로운 가게를 내면 인근에 새로운 점포를 만드는 ‘보복 출점’을 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프랜차이즈 업종의 실패는 가맹점주의 잘못이 아니라 처음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짙은 불공정성에 원인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만하다.
공자는 신분제가 사회질서를 유지하던 시절에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기소불욕 己所不欲 물시어인 勿施於人)”는 ‘서(恕·너그러울 서)’를 주장했다. 말은 단순하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다. 당시 사람은 계급으로 환원해 대우를 했다. 왕이면 왕으로 존중받고 노비면 노비로 멸시받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대상이 있고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싫은 것이라면 인간인 다른 사람도 싫어할 수밖에 없다고 간주한 것이다. 이 주장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등하게 싫어하는 대상을 가진 존재로 간주한다. 즉 공자는 신분사회를 살면서 신분을 떠나 사람이 대등하게 만날 수 있는 공유지대를 넓히고자 했던 것이다. 적어도 이 공유지대에서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을 가치를 지녔다.
프랜차이즈 업종을 보면 본사는 가맹점주에게 ‘당신이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많다’는 우월적 사고를 바탕으로 ‘계속 영업을 하려면 본사가 해야 할 일을 맡아야 한다’는 관행을 강요하고 있다. 입장을 바꿔 보면 본사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가맹점에 시키고 있는 것’이고 이는 공자가 말한 ‘서’와 정반대된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불공정한 행위를 강요하고 있으며 본사와 가맹점이 함께 성공하는 길보다 본사의 이해를 최우선하고 있다. 여기서 가맹점은 본사의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함께 성공하는 길을 찾는 동료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러한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는 우리 사회의 산업생태계를 지속 가능한 성장이 아니라 언제든지 돌출변수가 등장해 위기를 낳을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한다. 우리는 신분사회에서 공유지대를 개척했던 공자처럼 산업과 사회 각 영역의 불공정한 관행을 지양하고 상호 존중하며 상생하는 풍토를 삶의 기본으로 세우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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