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세그웨이’라는 1인용 첨단 전동스쿠터가 공개되자 ‘개인용 컴퓨터만큼 중요한 발명품’이라는 찬사가 잇따랐다. 미국의 발명가 딘 카멘이 만든 이 제품은 스쿠터인데도 균형 메커니즘을 이용해 오뚝이 같이 탑승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했다. 더구나 몸을 앞뒤로 기울이기만 하면 자동으로 전진하거나 방향 전환, 정지가 가능해 상당수 전문가들이 도시의 출퇴근 풍경을 바꿀 획기적인 제품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인터넷보다 더 혁신적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거액을 투자한 기업인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이런 찬사와 거리가 멀다. 도시의 출퇴근 풍경을 바꿀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일부 마니아 계층이나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운송 수단으로 전락했다.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2.0은 이 제품을 아예 ‘역대 5대 실패 상품’ 중 하나로 꼽았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비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격이란 것은 기술 발전과 더불어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 충분이 낮출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려웠던 것은 대중화 자체가 안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실패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우선 신기술 제품인 세그웨이가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과거의 성공에 취해 소비자의 시각을 무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딘 카멘이 이미 휴대용 인슐린 펌프 등을 발명해 갑부반열에 오른 터여서 신기술의 제품만 개발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는 것이다.
과연 소비자들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세그웨이를 타고 출근할 것인지, 이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워 해 구매를 기피하지는 않을 것인지 등등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는 분석이다. 신기술의 좋은 제품만 내놓으면 잘 팔릴 것이라는 이른바 ‘좋은 쥐덫의 오류’에 빠졌다는 얘기다.
이 말은 미국 시인 에머슨이 “좋은 쥐덫을 만들면 사람들이 당신 문 앞까지 길을 내어 찾아올 것”이라며 제품 성능의 중요성을 표현한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좋더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모토롤라가 전 세계를 단말기 하나로 통화할 수 있는 이리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높은 단말기 값과 통화료 때문에 1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오류는 기업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사에서도 수없이 발생한다. 우리의 창업시장 구조가 수없이 생겨나고 또 그만큼 망하는 ‘다산다사(多産多死)’구조가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과연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뒤따르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5’도 같은 실수로 화를 불렀다는 게 자체 고백이다. 갤럭시S5는 방수기능을 중시한 제품이다. 수영장이나 물가에서 핸드폰을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하는 불편을 없애면 판매가 늘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안테나를 없애야 하는 등 다른 기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철저한 실패였다. 소비자들은 물가에서도 자유로운 방수기능보다는 다른 기능을 더 선호해 삼성전자는 ‘갤럭시S6’를 서둘러 출시해야만 했다.
정책으로 넘어가면 ‘착한 정책’들이 이런 오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 파견근로자법, 비정규직 보호법 등이 그런 것들이다. 임금 피라미드구조의 바닥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이 정책이 부메랑이 돼 이들을 옥죄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다들 어떤 제품과 정책으로 이 위기를 넘어설 지가 당면과제다. 하지만 섣부른 제품과 정책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감정보다는 정확한 통계와 엄밀한 연구 분석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경제는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로 풀어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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