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8,800권을 사 모은 이른바 ‘만화 덕후’ 서울대 공대생은 네이버에 입사하고도 만화를 놓지 않았다. 지난 2004년 말단 사원 시절부터 단지 만화가 좋아 밤낮으로 만화 서비스 구축에 매달렸다. 만화 작가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운 디지털 만화 웹툰 플랫폼은 한국 만화 산업의 판을 흔들어놓았고 만화 덕후는 입사 10여년 만에 네이버 자회사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웹툰 생태계 개척자인 김준구(사진) 네이버웹툰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목표와 방식대로 이루는 것이 곧 창업이라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최근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SNU공학컨설팅센터에서 연 창업 최고경영자(CEO) 특강에서 “열정을 가지라는 말은 헛소리다. 열정은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좋아할 때 저절로 나오는 것”이라며 “좋아하는 것이 인생의 무한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네이버 사내에서 ‘단일 서비스 최장 담당자’라는 타이틀로 통한다. 김 대표는 스스로 회사를 세운 것은 아니지만 웹툰을 기획하고 1인 서비스부터 도맡아 글로벌 만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기까지 창업과 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이제껏 웹툰을 위해 불법·탈법 빼고 모조리 다해봤다고 말할 정도로 서비스 구축에 매진했다”며 “입사 후 일정한 퇴근 시간 없이 기획자로, 편집자·경영자로의 역할을 무한 반복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의 국내 사용자는 1,700만명, 해외는 2,000만명에 육박한다. 1년간 해외 출장 거리만 80만㎞에 달한다고 소개한 그는 “201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네이버웹툰이 참가했을 당시 수많은 유럽·동남아 웹툰 팬들이 전시관에 찾아와 ‘팬심’을 표현해줬을 때 더없는 기쁨을 맛봤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하기 위해 아이템을 물색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곧 창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예비 창업자들에게 조언했다. 창업 아이템이 정해지면 사용자층을 정확히 지정해야 한다. 김 대표는 “네이버웹툰 초기에는 13~18세 남자를 타깃으로 삼았다”며 “핵심 사용자를 100% 만족시켜야 주변 연령층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비즈니스모델 등 각 사업요소의 균형을 맞추고 차별화된 자신만의 무기를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가령 해외 사업은 현지화가 필수인데 인도네시아에서는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에 맞춰 게임과 연결된 웹툰 유료 서비스 모델이 유효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좋아하는 분야로 창업을 마음먹어도 ‘개고생’을 각오하고 첫발을 내딛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위 명문 공대를 졸업한 그도 10여년 동안 가족에게 만화 일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김 대표는 2014년 포브스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인’에 선정된 바 있는데 그의 모친은 이 보도를 접하고서야 아들의 ‘외도’ 사실을 알았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만화 창작 생태계를 만들고 해외시장으로 볼륨을 키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만화 애니메이션이 탄탄한 소비층을 바탕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사용자를 위한 다양한 사업 모델이 시도된다면 이 같은 만화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찾은 정답은 자신의 답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한 그는 “예비 창업자들이 ‘덕업일치(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신조어)’와 다양한 경험으로 창업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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