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터(Baxter)는 널찍한 가슴과 붉은 피부에 어른 키만 한 크기의 아주 괜찮은 일꾼이다. 두 개의 긴 팔로는 무거운 제품을 들거나 컨베이어벨트에서 물건을 내려 박스에 포장하는 일도 척척 해낸다. 일반 작업자가 동료를 대하듯 백스터의 손을 잡고 동작을 가르치면 금세 일을 배운다. 얼굴 역할을 하는 디스플레이로 작업자와 교감하고 위험이 닥치면 즉각 동작을 멈추기도 한다. 바로 미국 벤처기업인 리싱크로보틱스가 개발한 ‘협동 로봇’ 이야기다.
협동 로봇은 작업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안전하게 사람의 업무를 도와주는 로봇으로 일명 ‘코봇(cobot)’으로 불린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인간과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기 위한 협동 운용조건을 충족하는 산업용 로봇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과 달리 별도의 안전 울타리를 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인간 친화적 로봇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79년 이후 로봇 사고로 숨진 사람만 33명에 이르고 있으며 몇 해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쪽의 폭스바겐 공장에서는 로봇 오작동으로 직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로봇은 아무 경고도 없이 작업하고 있던 직원을 갑자기 철판에 처박았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협동 로봇은 2008년 12월 선보인 유니버설로봇의 UR 시리즈다. 학습과 진화가 가능한 협동 로봇은 작고 설치가 쉬우며 동작 방법이 간편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작업자가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될뿐더러 자신에게 벅찬 일을 시킨다거나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일종의 경박단소형 로봇이자 사람과 교감하는 일꾼인 것이다. 최근에는 판매가격이 3만달러 정도로 낮아지면서 세계 시장 규모도 2022년께 3조6,000억원으로 연평균 60%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산업현장에 협동 로봇을 설치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한다. 비록 ‘인간과 공존하는 새로운 로봇’이라지만 지금 같은 추세라면 사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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