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7일 오전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대한항공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인테리어 업체에 인천 영종도 호텔 공사를 주면서 공사비를 부풀려 돌려받은 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평창동 개인자택 공사비용을 댄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향후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자체적으로도 진상파악에 나서겠다”고 해명했다.
사건 자체는 대한항공의 비리 때문으로 인식되지만 재계에서는 경찰의 전격적인 행동 이유에 더 주목하고 있다. 최근 경찰이 주요 대기업을 훑고 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졌는데 이것이 실제 현실화된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경찰은 새 정부 들어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논란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울 ‘한 건’이 필요했다”며 “이것이 이번의 전격적 행동의 또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검찰이 앞서 ‘갑질 논란’으로 정우현 전 미스터피자 회장을 구속한 데 대한 ‘받아치기’인 셈이다.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또 다른 기업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날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의 피의자는 ‘불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경찰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진행한 자사 보유의 그랜드하얏트인천호텔 공사비용의 일부를 조 회장의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용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대한항공 본사에 수사관 13명을 투입해 호텔과 자택공사 계약서, 세무·회계자료 등을 압수해 분석에 들어갔다. 회사에서 조 회장의 인테리어 공사 계약서를 보관하고 있었던 만큼 관련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된 상태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앞서 5월25일에는 조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를 담당한 업체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다른 대기업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를 담당한 업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5월 중순 한 시민단체가 제보를 했고 경찰은 해당 자료를 입수한 뒤 곧바로 이 대기업 회장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자금 대납 여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왔다. 해당 인테리어 업체는 2007~2014년 이 회장의 자택 개보수 공사비용을 계열사로부터 100억원가량의 수표로 결제받은 뒤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 내용에는 이들 두 기업 말고도 다른 대기업과 관련된 것도 담긴 것으로 알려진 만큼 향후 수사가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한항공에 대해 “개인 자택 공사비용은 개인이 지출해야 함에도 호텔 공사비에서 해당 비용을 충당해 범죄 혐의가 있어 수사 중”이라며 “문제가 된 비용 총액은 아직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이날 본사 압수수색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이 알려진 후 20여분이 지나서야 짤막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이 조 회장을 직접 겨누고 있는 만큼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조 회장의 혐의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양해해달라”며 말을 아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대한항공을 제외한 전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이사직을 사임하는 등 쇄신하는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압수수색으로 이미지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대한항공은 향후 조사와 관련해 적극 협조하고 자체 진상파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최성욱·강도원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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