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4일 화성-14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드디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평양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국제사회는 그 대응에 대해 크게 다른 처방을 내놓고 있다. 미일 대 중러의 대립구도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과 관련해 “북한은 매우, 매우, 위험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런 행동에 대해 “몇 가지 매우 혹독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추가적 대북제재를 요구하면서 “선호하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한다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중러에 미국과 북한 중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지 선택하라는 양자택일식 압박도 가했다.
4월 합의한 미중의 대북 공조가 예상보다 빨리 파열음을 내면서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중국의 대북 관련 노력은 인정하지만 추가적인 노력을 해주지 않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북한과 교류하는 단둥은행에 대한 제재, 대만에 무기 판매 승인, 남중국해에서의 자유항행 군사훈련 승인 등으로 중국을 크게 자극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협력해주지 않으면 중국도 고통스럽게 하겠다는 복안이다. 미국의 의도대로 중국이 움직일지는 회의적이다. 19차 당대회를 앞둔 시진핑의 중국은 미국의 강압적인 태도에 오히려 더 강하게 저항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이미 강대국 정체성으로 전환하면서 대외적인 경제적 취약성을 급격히 줄였고 자체의 ‘홍색공급망’ 체제를 상당 수준 확립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연합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할 것이다. 중러는 6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군사적 해법은 반대한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대신 정치·외교적 ‘일괄타결안’을 제시했다. 중국은 이미 2016년 3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협정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쌍궤병행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3월 다시 북한의 핵 미사일 활동과 한미의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동시에 잠정 중단하자는 ‘쌍잠정중단론’을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중러가 제시하는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은 북한의 결단(핵과 미사일 실험 잠정 중단 선포)-한미 대규모 군사훈련 잠정중단-동시 협상 개시-상호 원칙 확정(무력 불사용, 불가침, 평화공존)-일괄 타결식의 한반도 비핵화 추진-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안보 제도 수립-북미, 북일 및 남북 관계 정상화의 수순으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6일 베를린에서 ‘신베를린 대북정책 구상’을 밝혔다. ‘구상’은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는 한 국제사회와 더불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호응한다면 체제 보장, 평화, 공동 번영을 통해 평화적인 통일의 길로 가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기존의 보수정부는 ‘통일’하자고 하면서 북핵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방치했다. ‘안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면서 국방 태세는 소홀히 하고 대신 미국에 더욱 의존적이 됐다. 구상은 미국과 중국에 동시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ICBM 개발을 멈추면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메시지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반드시 평화적 수단으로 하자는 메시지다. 제3의 방식으로 현 난국을 풀어보자는 고뇌가 엿보인다. 제재하지만 협력을 더 희망하고 전쟁하지 말고 공존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이 ‘민족 공조’를 외치면서도 핵무장을 더욱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만 매달릴 것이라는 점이다. 미중은 각기 전략적 이해에 따라 처방을 내놓아 북한에 대한 국제 공조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이 공조하지 않으면 어느 일방도 의미 있는 대북 처방을 내기 어렵다. 첩첩산중이다. ‘신베를린 구상’이 의미를 가지려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미중이 공조할 수 있도록 접점을 찾고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구상의 또 하나의 성공조건은 미중 관계의 변덕과 북핵의 위협을 견뎌낼 수 있는 자체의 국방태세를 이제라도 갖추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현재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국방개혁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그만큼 우리 처지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