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의 운용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는 간섭은 부적절하고 위험하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을 정부의 쌈짓돈처럼 여긴다는 발상부터 고약하다. 국민연금은 세금을 걷어 조성한 재정과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세금은 공적 서비스를 받는 대가의 일종으로 헌법상 국민의 의무이지만 국민연금은 엄연히 주인이 있는 돈이다. 2,100만명에 이르는 국민이 꼬박꼬박 적립한 공적 펀드다. 같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고 재정과 연금을 동일시하는 것은 착각이고 오만이다.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자율성 원칙을 강조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연금을 ‘정치·경제권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도 어긋난다. 공공주택과 보육시설 투자는 재정으로 감당하는 게 올바르다.
국민연금법에 따른 기금운용 지침상 투자원칙은 첫 번째가 수익성이요, 두 번째가 안정성이다. 이런 원칙을 무시하면 올해 600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민연금의 고갈을 앞당길 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세 번째 원칙인 공공성을 내세워 종종 사회적 투자를 주문하지만 공공성의 의미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지침 제4조인 운용 원칙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게 공공성의 원칙이다. 특정 집단을 위해 오용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만약 김 위원장의 의도대로 투자를 적법하게 유도하고 싶다면 기금운용 지침부터 바꿔야 한다. 그게 수익성과 안정성보다 더 중요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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