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격돌’이냐, ‘트럼푸틴’ 브로맨스의 재확인이냐로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미국 내 러시아 커넥션 수사와 맞물려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초 35분으로 예정됐던 두 정상의 비공개 정상회담이 2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이어진 가운데 회담 내용과 관련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한 양측 주장이 엇갈리면서 의혹은 커져만 가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장소인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미국·러시아 정상회담에 대해 “매우 분명한 ‘긍정적 케미스트리(positive chemistry)’가 있었다”고 밝혔다. 미 언론이 주시하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해 미 대통령으로서 공식 항의했지만 미·러 협력을 위해서는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 두 정상은 난민을 양산하며 내전이 심각한 시리아의 남서부에서 9일부터 정전에 돌입하기로 합의하는 등 시리아 안정과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구체적 성과를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트럼푸틴’으로 불릴 만큼 의혹을 샀던 두 정상 간 숨길 수 없는 ‘브로맨스’는 곳곳에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 앞서 언론에 공개된 첫 만남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당신과 함께해 영광(honor)”이라고 말해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만남이었다”고 평가한 두 정상의 밀담은 당초 35분으로 예정됐으나 주변의 만류에도 2시간 이상 지속되며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외신들은 회담이 길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미 측 관계자의 요청으로 회담장에 직접 들어가 마무리를 요청했지만 두 정상은 대화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틸러슨 장관은 “할 말이 아주 많아 두 사람 중 누구도 대화중단을 원하지 않았다”며 “두 지도자는 매우 급속히 결합됐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도 8일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며 “개인적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 내용에 대한 양국 주장이 서로 엇갈리면서 이날 회동에 대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특검 수사를 의식해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수차례 푸틴을 압박했다”고 밝혔지만 푸틴 대통령이 8일 회견에서 미 대선 개입에 대한 질문에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트럼프에) 확인시켰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가) 여러 관련 질문을 해서 답했고 그는 내 얘기를 알아듣고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미 정부가 공식 확인한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말만 듣고 수용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국무부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 부인은 예견됐던 것”이라고 강조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시리아 휴전 협상으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밝히는 등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자화자찬식으로 평가해 논란은 한층 격화하는 모습이다.
한편 미·러 정상 간 첫 만남이 당초 알려진 대립구도보다 관계회복에 맞춰지면서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의회 조사와 특검 수사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대선 기간인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의 큰아들인 트럼프 주니어가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러시아 정부와 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만난 것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8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에 이어 아들까지 ‘러시아 커넥션’에 가세했다는 의혹이 추가돼 잠잠하던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내통이 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확산되는 양상이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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