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 대선후보들의 공통공약부터 챙겨야 합니다.” 대선 직전인 지난 5월 초 중앙부처의 모 국장을 만나 한 말이다. 누가 되든 여소야대의 정국은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부서가 맡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챙겨야 하는 그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한 셈이다. 그도 공직생활 기간 여러 차례 선거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5월10일 국립현충원 참배 후 가장 먼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찾아 “후보들 간에 공통된 공약만큼은 우선적으로 빨리 입법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서민경제가 굉장히 어렵다”며 “좋은 정책도 많이 발표했기 때문에 잘 실현이 될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노력해달라”며 맞장구쳤다. 전날 문 대통령의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협치(協治)’의 시작으로 공통공약 입법화를 제1야당 대표와 합의하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은 5월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회 설치를 제안하고 합의한다. 국회와 긴밀히 소통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협치를 더욱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협치는 딱 여기까지였다. 한국당이 6월1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인준 강행처리에 대한 ‘유감’과 함께 “일방적 국정 설명회 성격의 협의체 구성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며 협의회 불참을 선언한다. 다른 야당들도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반대에 연대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은 인사청문회가 예고됐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10일로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보름 가까운 미국 방문과 주요20개국(G20) 회의 등 첫 양자·다자 순방외교를 마치고 정국은 중단된 장맛비처럼 일시 소강상태다. 문 대통령이 여야 대치 정국의 핵심이 되고 있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미뤄달라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요청을 받아 일단 임명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국 전망은 밝지 못하다. 당장 11일에 예정됐던 7월 국회 본회의는 야당들이 불참하면서 무산됐다. 그리고 야 3당은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의 임명연기 결정을 임명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며 ‘꼼수정치’ ‘술수정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여권 일각에서 협상 카드로 제기되는 한 명만 낙마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야당들은 아예 불가를 선언했다. 양측이 모두 협상 카드가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만큼 입장 차가 좁혀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 봐서는 청와대는 이번주 말 아니면 다음주 초 두 장관의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야 3당도 청와대의 지명철회 카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여권의 국회 정상화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다. 결국 다시 여야 간 충돌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7월 국회에서 여권이 희망하는 추경예산안과 정부조직법 개편안은 손도 못 대고 끝날 공산이 크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점이나 대안을 찾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여당인 민주당과 청와대의 ‘협치’ 방식은 요령부득이었다. 절충이나 타협을 위해서는 상대에게 줄 것도 같이 내놓는 것이 일의 순서다. 야당의 비판과 지적에 대해서도 명분과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오히려 협상의 주체가 돼야 할 원내대표가 ‘촛불민심’을 거론하며 야당의 비협조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집권당의 대표가 지나친 표현으로 지지기반이 상당히 겹치는 국민의당을 격앙하게 하고 있는 것이 여권이 주장하는 협치의 현주소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의 높은 지지는 그가 내놓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의 선의(善意)에 대한 기대다. 옳은 뜻이 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일종의 선행지수다. 그러나 결과물이 계속 나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책임 또한 결국 문 대통령과 여권 전체의 몫이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 방식의 협치는 언젠가 한계를 보일 것이 자명하다. /jho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