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기술력이 있어도 창업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기존 업계 강자들의 견제는 중소기업들이 겪는 흔한 어려움 중 하나다. 2년4개월이 걸린 ‘발목잡기 소송’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전문 기업인 선재소프트는 지금 없었을지도 모른다.
DBMS는 은행·증권사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핵심 프로그램이다. 선재소프트의 김기완 대표는 국내 DBMS 선도 기업인 A사의 대표를 지낸 창립 멤버였지만 지난 2009년 대주주와의 마찰로 회사를 떠났다. 개발자였던 김 대표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일부 직원들과 함께 선재소프트를 설립했다. 소문난 김 대표의 실력 덕택에 선재소프트는 창업 초기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밝기만 할 것 같았던 앞날에 구름이 드리운 것은 2013년 6월이다. A사는 김 대표가 회사의 DBMS 설계문서와 소스코드 등 핵심 노하우를 빼돌렸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영업비밀 침해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 이 프로그램을 구매한 증권사들까지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어 납품도 어려워졌다.
업계에서는 이 소송을 전형적인 ‘발목잡기 소송’으로 보는 시각이 파다했다. A사가 문제 삼은 기능들은 DBMS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기능들이어서 표절이나 복제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계속 진행됐다.
법률적 지식이 부족했던 김 대표는 법무부 ‘9988 중소기업법률자문단’의 도움을 받았다. 다솔국제특허법률사무소 소속 기은아 변호사는 선재소프트의 변호를 맡아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다. 기 변호사는 “A사가 만든 자동차에 엔진이 달려 있는데 선재소프트의 자동차에도 엔진이 달려 있으니 ‘제품을 복제한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라며 “고소인의 주장이 허위이고 영업 방해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소송을 신속히 끝내야 했던 선재소프트는 스스로 자사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6개월이 넘는 소스코드 감정 결과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인정됐다. A사는 재감정을 요청하는 등 소송을 이어갔지만 재감정도 같은 결과가 나오면서 결국 항소를 취하하고 법적 분쟁을 끝냈다.
기 변호사는 “영업 방해 목적의 소송을 당했다면 결백을 어떻게 빨리 입증할지가 관건”이라며 “절차에 익숙한 변호인을 만나고 기술 감정도 양 당사자가 입회한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 분쟁 장기화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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