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얼마나 싫은 일을 했길래 그렇게 주말이 좋아. 유명한 대학, 유명한 회사 찾아다니는 동안 네 꿈은 어디로 갔어….”
금발을 올려 묶은 한 남자가 청중을 향해 속삭인다. 맨발에 펑퍼짐한 바지만 보면 ‘야인’ 같은데 가사는 한국 직장인의 삶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섬세하다. 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10여명의 젊은이가 그에게 몰려와 묻는다. “아니, 한국 사람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세요?”
3년 전 교대역에서 ‘촛불 하나’를 불러 유명세를 탄 뒤 거리공연 영상마다 조회 수 40만회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은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27)씨. 지난해에는 아리랑TV의 국악 프로그램 진행자까지 맡으며 한국인의 마음을 흔든 그가 다음 달 한국을 떠난다. 8개월 동안 버스킹(길거리 공연)만으로 전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분주한 자카렐리를 지난 14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어렵게 만났다.
한국은 그에게 각별한 나라다. 영국 태생이지만 생후 3개월 만에 일본인 가정에 입양됐고, 언론사 특파원이었던 양아버지 덕에 유년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 중학교를 다닐 땐 이국적인 외모 탓에 지독한 따돌림을 당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부턴 혼자 고등학교 교재를 독파했다. 매일 고시원 천장을 바라보며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바빴다.
두려움 많던 소년을 변화시킨 것은 2년여의 글로벌 노숙생활이었다. 모든 것을 비우겠다는 다짐으로 옷 한 벌과 기타 한 대로 유럽 전역을 누볐고 노숙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노숙 만 2년째 되던 해, 그는 새롭게 시작된 삶을 기념하기 위해 첫 자작곡 ‘Blue Sky High’을 썼다.
해마다 유명 기획사 사장들이 전속계약을 하자고 찾아오지만 그의 발걸음은 전 세계 길거리를 향한다. “노래하고 기타 치며 ‘솔직한 돈’을 받고 사는 것”이 평생의 꿈인 까닭이다. 그는 “만약 내가 그 때 100달러를 들고 한국을 뜨지 않았다면 여전히 같은 고민의 수렁에 빠졌을 것”이라며 “단순히 가난해지지 않으려, 미래의 불안감을 덜어내려 애쓰기보다 다양한 창의성을 발휘해 원하는 목표를 이루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거주하던 도시가 덥거나 추워지면 곧장 봄 날씨를 찾아 떠난다는 그는 ‘도망가느냐’는 주변의 놀림에도 “노래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찾는 것”이라고 응수한다. 그는 오는 22일과 23일 마지막 공연을 마친 후 다음 봄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한국에는 다시 안 오느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 봄을 찾아갈 때쯤 다시 돌아오겠죠.”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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