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새벽 들릴 듯 말듯 귓가에 맴도는 소리에 잠을 깨 보면 이미 늦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남기고 간 간지러움에 일어나 불을 켜고 온 방을 수색하지만, 여간해서 쉽게 잡히지 않는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지난 1955년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이 말라리아에 걸렸고, 그 가운데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면 모기는 더 이상 살려둬서는 안 되는 극악한 해충에 불과하다. 모기뿐 아니라 파리, 진딧물 등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들로 박멸해야 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해충이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적인 곤충학자 길버트 월드바우어 미국 일리노이 대학 명예교수가 쓴 ‘곤충의 통찰력’은 이렇듯 악명 높은 해충들만 골라 그들의 삶과 생활양식을 정리했다. 모기 하나만으로도 참기 어려운데 다양한 해충들을 모아 놓은 책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부제(해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가 말하듯 책을 유심히 읽다 보면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해충들의 모습에 혐오감이 조금씩 줄어든다.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제 먹잇감이 아닌 식물을 먹고 죽는 곤충보다 굶어 죽는 곤충이 더 많다. 옥수수근충, 광대파리, 코들링나방, 밀혹파리 등은 한결같이 자기 ‘먹잇감’이 아닌 식물을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쪽을 택한다. 배추흰나비 유충, 배추좀나방 등의 곤충은 영양 성분이 아닌 화학 물질의 맛이나 냄새로 어떤 것이 자신에게 적절한 식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식물의 세계에는 이들 화학 물질이 수천 가지나 널려 있는데, 그 대부분은 독성이 있으며 곤충에 맞서 식물을 보호한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크기인 이들 곤충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오랜 기간 통찰력을 키워 온 것이다.
해충들이 천적으로부터 목숨을 지켜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밤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귀가 있어 박쥐가 반향 위치 측정을 하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회피 작전을 쓰며, 검은제비꼬리나비는 여러 가지 방어 기제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은 유충은 마치 새똥처럼 보이므로 새들이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들의 번데기 역시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겨울에는 갈색이나 회색으로 환경과 어우러지는 식의 위장술을 구사해 눈에 띄는 상황을 피한다.
해충들은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는 차원을 넘어 최적화된 상태로 생존하기 위해 균형 잡힌 식단을 짤 수도 있다. 큰담배밤나방 애벌레는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제공한 먹잇감 가운데 설탕과 단백질을 자신에게 맞도록 조화롭게 선택했으며, 메뚜기는 여러 가지 식물종을 섞어 제시했을 때 최적의 비율로 섞어 먹었으며, 암컷 모기는 피와 꿀을 최적의 비율로 섭취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생존을 위해 자기 종을 재생산하고,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고, 성숙할 때까지 끊임없이 먹고 성장하는 이들 곤충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곤충학자 스티븐 앨프리드포브스가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흔히 스스로를 자연의 주인이자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곤충이야말로 인간이 그러한 시도에 나서기 훨씬 전부터 세상을 통제하고 완전히 장악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그들 고유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으려 할 때마다 어찌나 집요하고 능란하게 저지하던지 인간은 그들을 상대로 그 어떤 중요한 우위를 점했다고 우쭐대기 힘든 처지다.” 2만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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