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부터 가구, 도예, 조각까지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이헌정(50) 작가가 서울 송파구 롯데갤러리 애비뉴엘 아트홀에서 ‘여행 2017(The Journey 2017 전(展))’으로 50여점의 작품과 함께 관객들을 맞이한다.
전시 주제인 ‘여행’은 시공간적인 여행이 아니라 건축에서 설치작업으로, 또 미술에서 건축으로의 장르 전환을 의미한다. 이 작가는 “건축은 작가 혼자서 만들어내는 작품이 아니라, 음악에서의 심포니처럼 거대한 시스템에 구현되는 예술”이라며 “이렇듯 건축과 미술은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거대하게 바뀌기 때문에 이를 여행이라 표현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여행을 시작한 동기가 무엇인지’란 기자의 질문에 “(관객들은)같은 작품이라도 현대미술이라고 규정하면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부터 시도하는 반면 건축이나 가구라고 규정하면 친숙하게 즐기는 경향이 있다”며 “단어 하나만으로 작품을 다르게 느낀다는 점이 재미있어 장르 간 전환을 시도한다”고 답했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기차선로에는 전시 주제인 ‘여행’처럼 장난감 기차가 조그만 공을 앞에 두고 선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높낮이가 다른 선로를 지나는 장난감 기차는 마치 산을 타듯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해 질주한다. 장난감 기차 앞 조그만 공은 내리막길에서는 자기 혼자 먼저 굴러가며 기차와 멀어지지만, 오르막길에서는 힘에 부치는지 속도가 떨어져 다시 장난감 기차와 만난다. 그리고 기차의 힘에 의존해 올라간다. 선로 옆에는 기차 앞에 달린 소형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가 있어,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공을 기차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공이 기차를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이 작품에 대해 “귀환이 없는 여행은 방황”이라며 “(기차 앞 공처럼)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어 “여행에는 대상을 아주 깊이 있게 미시적으로 들어가서 보는 여행과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여행이 있는데, 모니터로 보는 공은 미시적인 여행을, 사람의 눈으로 보는 공은 멀리서 보는 여행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가구와 예술작품의 경계선 위에 있다. 관객은 그의 작품인 커다란 책상과 의자를 마주했을 때, 과연 이 위에 앉아도 될지 고민에 빠진다. “예술가는 스스로 규정하면 안 된다”는 그는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독자에게 폭력”이라 강조했다. 이어 “조각의 중심에서 조각가란 이름으로 사는 것보다 변두리에서 일어나는 일, 겹쳐지는 부분에 관심이 많다”며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그저 경계에 있으면서 언제든지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시는 8월6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갤러리에서, 8월10일부터는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9월17일까지 롯데갤러리 광복점에서 진행된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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