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Great Plains). 축복받은 땅. 북미 대륙 중앙의 넓은 초지와 풍부한 수자원은 19세기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인 목축 지대다. 사막도 있지만 지력 좋은 땅이 널렸다. 일찍부터 ‘씨를 뿌리고 한없이 나아가 돌아오면서 추수한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세계적인 경제·사회분석가 겸 행동주의철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육식의 종말’에 따르면 미국 중서부의 ‘공짜 목축업’이 시작된 곳도 대평원이다. 스페인 선교사들과 목축업자들이 기르다 멕시코 독립전쟁 때 놓아버린 소들은 야생에서 1830년대에 30만 마리, 1860년대에는 350만 마리까지 늘어났다.
목장주나 축사, 사료가 없이도 소들은 최적의 조건에서 자랐다. 대평원의 다년생 풀이 소에게는 이상적인 식량이었다. 심지어 겨울에도 자라는 천연 목초를 뜯어 먹으며 소 떼는 번식하고 유유히 돌아다녔다. 대평원에서는 스페인이 놓친 소뿐 아니라 북미 대륙에 6,000만 마리가 있었다는 미국 들소(American Bison/Buffalo)까지 배불리 먹었다. 1890년 미국 국세조사국이 공식적으로 서부 개척 종식을 선언했을 때. 대평원에는 서유럽 전체 면적과 맞먹은 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농사도 잘됐다. 세계적인 냉해로 국제 곡물 가격이 두 배 치솟은 1894~1895년 유달리 미국만 대풍을 거둔 것도 대평원의 옥토 덕분이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부터 대평원에 재앙이 찾아들었다. 무성하던 풀밭이 사막으로 변하고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먼지 폭풍이 일었다. 세상이 꼭 먼지 구덩이(Dust Bowl) 같았다. 여름 기온이 5℃에서 43℃를 오가는 이상 기후에 비도 내리지 않아 강줄기가 메말랐다. 한낮에도 강력한 모래바람이 하늘을 가려 밤처럼 캄캄한 적도 많았다. 대평원에서 이는 모래 폭풍이 뉴욕과 워싱턴까지 날아가 사람들을 질식시켰다. 다락에 먼지가 쌓여 천장이 무너지고 겨울이면 붉은 눈이 내렸다. 온도까지 올라갔다. 더스트 볼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시카고의 1935년 7월 24일 낮 온도가 관측 이래 최고치인 섭씨 44도까지 올라갔다.
축복의 상징과 같던 대평원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 이유는 인간의 탐욕과 가뭄. 영농기계화 바람 속에 1차대전으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대거 도입된 ‘들창코 괴물(트랙터)’을 모는 농장주들은 야생 풀을 뿌리째 갈아엎었다. 사람들은 몰랐다. 야생 초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야생화한 소 떼가 뜯어먹고 빗물에 의한 토양 침식을 막아주며 지하수를 가두는 역할을 했던 야생 초지를 없애고도 미국인들은 ‘문명의 발달로 인한 농업기계화’ 찬가를 불렀다. 그럴 만했다. 처음에는 소출이 늘어났으니까. 땅은 곧 지력을 잃었다. 지반이 약해져 옥수수 줄기가 쓰러졌다.
사람들은 알곡을 생산하지 못하는 농지를 떠나 살길을 찾아 나섰다. 중부에서 서부로 떠난 인구가 250만 명. 미국 역사상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인구의 이동은 전무후무하다. 고향에 남고 싶어도 대부분은 그럴 수 없었다. 농사가 안돼 은행 빚으로 사들인 트랙터는 고물로 변해가고 원리금을 갚지 못해 집과 땅을 금융회사에 내준 채 쫓겨나듯 삶의 터전을 등졌다. 새로 이주한 곳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29년 가을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으로 촉발된 세계 대공황 탓이다. 어딜 가도 실업자 천지고 일자리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간혹 일감을 주는 회사나 농장주들은 터무니없는 품삯을 주며 노동력을 착취했다.
중부 출신 이주 농민들에 대한 일부 농장주들의 착취와 비인간적인 행태를 취재하던 ‘샌프란시스코 뉴스’ 신문사는 한 기자는 취재 수첩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당시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미국의 사실주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년)’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분노의 포도’의 가장 유명한 구절. ‘사람들의 눈에는 낭패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의 포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하고 그 포도 수확기를 위하여 알알이 더욱 무겁게 영글어간다.’
‘낭패와 굶주림’은 비단 78년 발표된 소설에만 있을까. 분노를 영글게 만든 두 가지 요소인 자연재해와 대공황에서 현대인은 얼마나 자유로울지 모르겠다. 세계 경제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일을 책임질 젊은이들은 희망을 찾지 못한다. 자연재해는 또 어떤가. 미국 중서부의 기후 조건이 ‘더스트 볼 이후 최악’이라는 외신이 잊을만하면 날라온다. 강수량이 더스트 볼 시절보다 절반으로 떨어졌고 온도가 49℃까지 올라갔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미국산 밀의 절반, 쇠고기의 60%가 대평원 지역에서 나온다는 점. 국제 곡물 가격이 언제든지 춤출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 재해라면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서울의 미세 먼저는 세계적인 연구 주제다. 최근에는 미세먼지의 52%가 국내에서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 탓만 하고 있기에는 대기 오염 수준이 심각하다. 방법이 없을까. 1940년 초반 더스트 볼 현상이 사라진 것은 사막화하는 평원에 풀과 나무를 심은 덕분이다. 지구를 건강하게 보존하려는 국제 협력이 절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으로는 대기 오염 시설을 확충하고 중국 고비 사막 녹화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다만 국제협력은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협약마저 무력화하겠다고 나서는 판이니. 더스트 볼과 대공황에 시달렸던 1930년대를 미국인들은 ‘더티 서티즈(Dirty Thirties)’라고 부른다. 지구촌의 폐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눈앞의 이익’에만 목을 매겠다는 시대가 부끄럽다. 후손들이 ‘더러운 시대(Dirty Ages)’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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