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에 인기 아나운서, 재벌과도 결혼했던 혜란은 소위 ‘다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부족한 스펙에 제대로 꿈도 이루지 못한 애라를 끊임없이 질투했다. 어쩌면 ‘진짜 사랑하는 법’을 몰라 동만과 애라의 곁을 맴돌며 그저 사랑을 빼앗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방법이 어긋나 못돼 보인 인물. 그럼에도 이엘리야는 혜란을 처연하게 여겼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서울경제스타와 만난 이엘리야는 극 중 야망에 사로잡힌 혜란과는 사뭇 다르게 훨씬 밝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종방 소감과 함께, 촬영하면서 외롭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젊음을 주제로 한 행복한 주제에 좋은 분들이랑 함께 즐겁게 끝낼 수 있어서 기쁘다.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외롭단 생각은 덜 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혜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내가 아직은 부족하다보니 배우들과 너무 친하게 지냈을 때 그 티가 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벽을 만들기도 했다. 악역 캐릭터가 원래 감당해야하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김지원과는 박서준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연기를 했는데, 실제 촬영장에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정말 언니 동생처럼 많이 편하게 해주셨다. 그래서 재미있게 찍었다. 서로 머리가 흐트러지면 만져주기도 하고 배려하면서 촬영했다. 성격이 서로 차분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잘 통했다.”
-복잡 미묘한 혜란이라는 캐릭터를 연구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혜란은 감정표현에 솔직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아나운서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라 대사를 할 때도 처지지 않게 중간 지점을 유지하면서 연기하려 했다. 내 나이에 맞게 친구처럼 대사를 하면 무게감이 떨어질 수 있어서 센 것도 오히려 조곤조곤 연기하려고 했다. 흐트러지지 않게 연기하려 했다. 장예진(표예진 분)도 내 입장도 다 이해는 간다. 그래서 얄밉지는 않다. 단면적으론 얄미울 수는 있지만.”
-아나운서 캐릭터인 탓에 외형적으로도 흐트러지지 않아야 했다.
“머리도 일부러 잘랐다. 1년 만에 작품을 다시 하는 거라 새로운 마음으로 하려 했다. 아무런 미련 없이 머리를 잘랐다. 아나운서 준비를 하면서는 딕션이 좋은 것, 아나운서 톤을 잘 내는 것에 신경을 썼다. 사촌언니가 아나운서 출신이었던 덕에 언니에게 녹음도 받아서 같이 연습도 하고 그랬다. 계속 녹음한 걸 듣고 따라했다.”
-혜란이 그토록 애라에게 시기심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모두 대학생 때 만났다. 사실 애라와 나는 라이벌 구도가 아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혜란은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애인인 듯 친구인 듯 동만 옆에 붙어있는 애라가 거슬렸던 거다. 처음에는 ‘언니, 주제넘지 마세요’ 정도로 말하다가 감정선이 진전될수록 시기가 커진 것 같다. ‘너는 내 상대가 안돼’라고 생각하다가 점차 흔들렸을 거다. 재벌가에 시집도 가고 아나운서로서 성공의 정점을 찍었는데, 헤란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대한 애라에게 경고를 줬던 것 같다. 사실 동만과 애라가 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둘이 연인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옆에 있던 것에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대사가 있다. ‘오빠는 나한테 잔인했다’라고. 이미 이길 수 없는 게임이지 않았을까. 자존감도 높고 경쟁심이 센 캐릭터라 대결구도로 보인 것 같다.”
-박서준과의 진한 키스신이 큰 화제가 됐다. 촬영 비화가 있다면?
“여자가 리드해서 키스를 하는 신이 많이는 없는데, 나도 첫 키스신이라 긴장했다. 주변에서는 오히려 혜란이 두드러져 보였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줬다. 그 장면에서 박서준 씨 뒤에 신발장이 튀어나와있었는데, 그것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면서 박서준 씨가 많이 배려해줬다. 땀 흘려서 찍었다. NG도 계속 났다. 처음에는 입만 맞췄는데, 감독님 지시에 따라 두 번째는 입을 길게 맞췄다. 너무 입만 대고 얼어있으니 감독님께서 ‘혜란이라면 순하게만 키스하진 않았을 것 같다’고 하셨다.(웃음) 드라마에서 ‘판타스틱4’(박서준, 김지원, 안재홍, 송하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데 내 장면에서 NG를 계속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화끈하게 끝내고 싶었다.”
-악역을 맡다보니 악플로 고생하진 않았나?
“그래서 일부러 반응을 잘 안 보려했다. 처음에 ‘황금복’이라는 작품으로 악역을 했을 때도 잘해도 욕을 먹고 못 해도 욕을 먹는 상황에서 쿨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연기할 때는 나 자신도 잘 돌보려 해서 일부러 피드백을 안 보려했다. 나는 최대한 작품에 집중하려 했다.”
-그렇게 마음고생하고 시기질투 하던 혜란이 엔딩에서는 동만과 애라의 사이를 쿨하게 인정하고 떠난다.
“나는 굉장히 만족하는 엔딩이다.(웃음) 혜란이 자체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었던 게 아니고 동만을 데리고 과거로 가고 싶었던 거였다. 동만과 애라를 이어줌으로써 그렇게 악한 역할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엔딩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왔을 때 어떻게 혜란이답게 쿨하게 보일까 생각했다. 멋진 역할이라 생각한다. 퇴장할 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지 않는가. 혜란은 불편한 느낌을 계속 줘야 해서 옷도 그렇게 입었다. 작가님, 감독님이 많이 신경 써주셨다. 어쩌면 개연성이 부족할 수 있어도 공백을 잘 채워줬다고 생각한다. 측은지심을 잘 보여준 것 같다. 혜란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을 보여준 것 같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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