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주요 위탁생산 업체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기기 제조사인 대만 폭스콘이 미국 위스콘신주 남동부에 100억달러(약 11조1,3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액정표시장치(LCD) 생산공장을 짓는다. 미국 내 첫 생산기지를 설립한다는 폭스콘의 이번 결정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LCD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높은 미국에 신규 공장을 짓는 폭스콘의 결정에 대해 업계에서는 “비정상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투자내용을 발표했다. 궈 회장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LCD 제조공장이 단 한 곳도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우리는 미국인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공헌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지원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궈 회장에게 거대하고 훌륭한 공장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줘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만약 내가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100억달러나 되는 돈을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투자 유치를 자신의 공으로 돌렸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미시간·일리노이 등 6개 주와 경합을 벌였던 위스콘신의 스콧 워커 주지사는 “폭스콘 공장 부지 규모는 약 200만㎡로 펜타곤의 3배에 달한다”며 “이곳에 취업한 이들은 연간 5만3,000달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으로 애플·아마존·구글 등의 전자기기를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은 미국에서 단기적으로 3,000개, 장기적으로는 1만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폭스콘의 이번 결정에 대해 벌써 회의적인 목소리가 크다. 미국 민주당에서는 폭스콘의 전 세계 직원 수가 120만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위스콘신 공장의 비중이 높지 않으며 백악관의 요청에 따른 상징적 결정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위스콘신주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폭스콘은 거창한 발표와 달리 실천이 미흡하다”며 “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민간 부문 일자리가 안전한 노동조건과 양질의 임금을 제공할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폭스콘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국내 LCD 업계도 궈 회장의 발표는 어디까지나 트럼프 행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한 ‘비정상적인 의사결정’이라며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폭스콘의 미국 공장 설립이 한국산 제품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LCD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TV 및 모바일패널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이며 LCD는 대량생산에 들어간 이노룩스와 BOE 등 중국 업체들의 물량공세가 내년부터 본격화해 공급과잉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며 굳이 새 공장을 짓겠다는 결정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인건비가 한국의 2~3배, 동남아의 10배 이상 들어가는데다 LCD 신규 공장은 4~5년간 투자비용 회수와 양산성 확보를 위해 감가상각을 거친다는 점에서 제조원가 경쟁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도 한국산과는 가격·제품 경쟁력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애플이 큰 공장 세 개를 미국에 짓기로 했다”고 공언한 것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애플은 직접 공장을 짓거나 운영하지 않는다”며 “(신축·투자) 가능성이 있는 것은 고도화된 컴퓨터 시설(서버 복합센터)로 이 경우 근로자는 거의 필요 없다”고 지적했다. /이수민·신희철기자 noenem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