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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대기업 노사의 부끄러운 민낯

산업부 윤홍우 기자





LG그룹 계열사들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노사’라는 단어 대신 ‘노경(勞經)’이라는 말을 쓴다. 노경은 ‘근로자와 경영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회사 경영에 참여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사가 다소 대립적인 뉘앙스라면 노경에는 근로자와 경영자 간 상호 존중 속에 화합하자는 LG의 인화 정신이 엿보인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LG가 가장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정도로 LG는 다양한 측면에서 재계의 모범 기업으로 꼽혀왔다.

그랬던 LG그룹의 주력사인 LG화학에서 노조 불법도청 사건이 터진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서울경제신문 단독 보도로 알려진 이 사건은 LG화학 전북 익산공장에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중 노조 휴게실에 사측이 마이크 형태의 불법 도청장치를 설치했다가 노조 간부들에게 발각된 일이다. LG화학은 공식 사과문을 내며 진화에 나섰지만 검찰 고발까지 이어지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어떤 해명을 하더라도 사측의 이번 불법도청 행위는 규탄받아 마땅하다. 노경 관계를 담당하는 한 임직원의 ‘과잉 충성’이었는지, 사측의 조직적인 행위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LG가 자랑하던 노경 관계는 이번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사태의 본질을 더 들여다보면 노조의 그간 행태에 대해서도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불법도청 사건으로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지만 사실 LG화학 노조는 올 초 연장 근로 거부 등을 이유로 오창공장 가동을 수차례나 중단시키는 행위를 자행했다. LG화학은 이 사건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민사상 손실에 대해 노조에 책임을 묻는 과정이었다. 막무가내식 행동은 노조가 먼저 시작한 셈이다.



불법도청 사건 이후 노조의 행태도 실망스럽다. LG화학 노조는 이번 불법도청 건을 빌미로 ‘오창공장 가동 중단’ 관련 노조원 140여명과 노조 간부 등에 대한 징계를 철회할 것을 사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대표이사에게는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내놓으라”는 압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리 노조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라지만 갑질의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LG화학 내부에서도 나온다.

더 심각한 것은 이처럼 곪을 대로 곪은 노사 문화가 비단 LG화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에 내재된 암적인 병폐다. 매년 임단협 과정에서 ‘뒷거래’가 이뤄지고 무분규 타결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도 노사협상을 담당해본 직원이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실이다. 한국의 기업 노조는 근로자를 대변하기보다는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정치 세력’으로 변질된 지 오래고 경영진은 그런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한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구시대적 노사 문화로 우리 기업들이 이 땅에서 버틸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최근 들어 베트남으로 떠난다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 탓만은 아닌 듯하다.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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