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하며 베네수엘라 전국 곳곳에서 전시를 방불케 하는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등 정국이 극심한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야권은 이번 선거가 ‘독재를 위한 수순’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선거 결과 발표 이후 충돌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전국 1만4,500개 투표소에서 실시한 제헌의원 선거에 유권자의 41.53%인 808만9,320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투표자가 200만~300만명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깬 투표율이 나오자 마두로 대통령은 결과에 고무돼 카라카스에서 “우리는 이제 제헌의회를 갖게 됐다”며 승리를 선포했다. 선관위가 공식 선거 결과를 발표하면 54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제헌의회는 72시간 내에 출범한다.
개헌을 위한 선거에 반대해온 야권 및 반정부시위대는 이날 마두로의 선거 강행에 반발하며 곳곳에서 도로를 봉쇄하고 사제폭탄을 제조하는 등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를 벌였다. 야권이 이날 시위 사망자를 16명이라고 밝힌 가운데 베네수엘라 검찰은 사망자 수를 10명이라고 확인했다. 전날에는 선거에 출마한 호세 펠릭스 피네다 변호사와 야권 지역 간부인 리카르도 캄포스가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새 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의원 선거에 야권 및 지지자들이 이토록 크게 반발하는 것은 이번 선거가 의회를 무력화하고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 장기화 길을 여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야권과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지난해 대통령 탄핵을 위해 추진한 국민소환투표가 무산된 데 이어 3월 대법원이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입법 권한을 대법원으로 넘기라는 판결을 내리자 거리로 뛰쳐나와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거센 반발로 당시 판결의 일부는 취소됐지만 마두로 대통령이 의회 무력화의 ‘본편’격인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함으로써 국민감정을 폭발시킨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도 마두로의 독재 야욕을 비난하고 있다. 30일 밤 미 국무부는 성명을 내고 “제헌의회 선거는 독재를 향한 행보”라며 “새 국회가 국민의 결정권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미국은 콜롬비아·파나마에 이어 페루·아르헨티나·스페인·캐나다·코스타리카·멕시코 등과 함께 이번 선거 결과를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여권은 이번 선거가 베네수엘라의 자주성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여당 대표인 디오스다도 카베요는 “해외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를 결정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윤리적·도덕적 승리”라며 “세계가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인가”라고 반문했다. BBC는 살인적인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신음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가운데 가격통제·국유화 등으로 복지 재원을 마련했던 이전 정권의 ‘차비스모(차베스주의)’를 기억하는 일부 유권자들이 여당에 표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7월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563.2%이며 2월 기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에 달했다.
한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면서 국제원유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이날 싱가포르 원유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0.5%가량 올라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섰으며 북해산브렌트유도 0.63% 상승한 배럴당 52.85달러에 거래돼 지난 5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원유재고가 휴가철을 맞아 눈에 띄게 감소한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정권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예고함에 따라 글로벌 원유수급에 변동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의 대미 원유 수출은 하루 평균 75만배럴 규모로 이는 미국의 전체 원유 수입량의 10~15%를 차지한다. /김희원·이수민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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