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지난 1950~1960년대 사회주의 진영에서 중국과 소련 간에 대단히 격렬한 노선 분쟁이 일어났다. 사실 이는 노선 싸움이라기보다 양보 없는 국익 싸움에 가까웠다. 국익 앞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에서 자신을 지원한 두 혈맹의 갈등을 지켜보며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고 스스로 강해져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대립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더 나아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핵을 바탕으로 한 국방력과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자립형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경제·국방 병진노선’이다. 김일성은 1966년 10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이라는 보고를 통해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전면적인 국가 지도 이념으로 내세운다. 뒤이어 나온 정치 이념인 주체사상도 경제·국방 병진노선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가 핵심 가치인 주체사상은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진화시킨 이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정일보다는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닮고 싶어 한다. 풍채나 옷차림, 머리 모양은 물론 공식 석상에서의 제스처까지 김일성을 따라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런 김정은이 자신의 정책노선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택한 것은 김일성의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2013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는데 핵능력과 경제력을 향상시켜 주변국과 대등하게 맞서겠다는 뜻을 담았다는 점에서 김일성의 정책과 유사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 북한이 전략적 셈법을 바꿀 수밖에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북한은 어떠한 제재와 압박에도 전략적 셈법을 바꾼 일이 없다. 북한은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한 후 ‘협상 카드’로의 핵과 미사일이 아닌 실제적인 미국 핵 타격 능력을 갖추기 위해 모든 피와 땀을 쏟았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 이것이 바로 핵·경제 병진노선의 핵심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충분히 작고 가벼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각종 운반수단을 완성할 때까지 자신들의 캘린더에 적힌 일정표에 따라 계속 도발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도발을 멈추면 대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제안은 앞으로도 그 전제가 충족되기 대단히 어렵다. 지금이라도 모든 한반도 당사국이 북한 문제에 전면 개입해야 한다.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비판하면서 그때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접근 방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시간은 1~2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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