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책임론’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현실적 안보 리스크로 부상하자 독자적으로 초강경 대북제재를 예고하는 동시에 북한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온 중국에 대한 제재와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작업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반도 긴장 완화는 미국과 북한에 달렸다”며 미국의 ‘중국 책임론’에 대한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으로 관계 개선의 단초를 마련했던 양국 관계는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미국은 지난달 28일 북한의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실험 이후 더 이상 구두 압박과 중국을 통한 우회적인 북핵 제재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거부하면서 추가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고 경고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소집한 내각회의에서 강력한 독자 대북제재를 실행에 옮길 방침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우리는 (북핵 문제를 포함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데 대해 미국 외교가에서는 미 정부가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이 아닌 독자적 조치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냈으며 조만간 초강경 대북 관련 제재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절대적 의존을 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전례 없는 제재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주 중 중국에 대한 강력한 금융·무역제재를 발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산 수입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보이콧(제3자 제재) 도입 등 그동안 미국이 미뤄왔던 압박 조치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까지 중 자본의 미 기업 인수합병(M&A) 승인을 모두 중단하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 의원이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중국의 미국 투자를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정부는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속도를 낼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 국방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 ‘임시 배치’ 지시를 내린 것과 관련해 4기의 사드 발사대를 언제든 속히 배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이날 밝혔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추가할 부분을 배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대북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대통령과 국가지도부에 군사 옵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고 항상 군사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연일 쏟아지는 미국의 구두 압박 공세와 중국을 겨냥한 강력한 금융·무역제재 예고에 강력 반발하며 오히려 북한 감싸기와 미국 책임론 부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류제이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이날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긴장 완화는 중국이 아닌 미국과 북한에 기본적으로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또 한국이 사드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를 결정하자 지난달 29일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를 초치해 사드 배치 중단과 장비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
중국 매체들도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에 매몰돼 있다고 비난했다. 보수매체 환구시보는 1일 사설에서 미국의 외교전을 ‘다리를 셀 수 없는 문어’라고 표현하며 “중미 관계에서 양국이 싸우지 않고 생업을 유지하면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데 미국 매체와 의회는 물론 관리들조차 중국을 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화통신도 앞서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한반도 상공에서 무력시위 비행을 한 데 대해 “트럼프가 분풀이 대상을 잘못 찾았다”며 “‘중국의 북핵 책임론’ 주장은 본말을 전도해 책임을 전가하려는 일부 인사의 꿍꿍이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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