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뿔이 날 대로 났던 사건(들)이다. 피해자들의 오랜 침묵 끝에 영화계에서 ‘여성 인권 바로잡기’가 제기됐다. 이른바 ‘김기덕 사건’이 시발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지금까지 극심한 호불호를 안아왔다. 대중은 그의 작품을 크게 ‘예술’과 ‘기괴함’이라는 두 시각으로 나눠 바라봤다.
‘영화’는 유독 흑백논리로 작품의 성패가 갈리는 분야다. 어떤 이유로든 ‘인정받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흔히 말하는 ‘좋은 작품’이 결정 난다. 거기엔 상업성 혹은 예술성이라는 견해가 작용한다. 김기덕 감독은 ‘예술성’을 기준으로 고평가 받아온 감독이었다.
해외 유수영화제에서도 이어진 김기덕 감독에 대한 극찬은 국내 영화계에서 그의 입지를 더욱 크게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비롯,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 시체스영화제, 시카고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김기덕의 영화가 수상의 대상이 됐다.
국제적 명성, 심지어 ‘국위선양’의 공로자로 일컬어지는 김기덕에 대해 많은 영화인들과 대중들은 그의 결과물에 고개부터 끄덕이고 봤다. 이는 ‘영화 좀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난해한 세계관의 김기덕 영화들은 그렇게 ‘예술’로 포장돼 ‘영화의 안목’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됐다.
그의 작품에서 주로 보이던 극단적 피폐함, 혐오적 여성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짙은 폭력성, 비상식과 비도덕성은 언제나 의구심을 자아내면서도 ‘사회문제 제기’를 하는 감독이라 평가됐다. 그렇게 매 작품마다 논란을 부르던 ‘문제적 감독’ 김기덕이 이번에는 궁지에 제대로 몰렸다.
사건은 최근 여배우 A 씨의 김기덕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불거졌다. A 씨는 김기덕 감독이 2013년 3월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감정몰입을 명목으로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한 혐의를 들며 최근 고소 절차를 밟았다. 이 뿐만 아니라 A 씨는 당시 김 감독이 시나리오에 없던 베드신 촬영까지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기덕 감독은 지난 3일 김기덕 필름을 통해 “연출자 입장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고 다수의 스태프가 보는 가운데서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라며 “그럼에도 스태프 중 당시 상황을 정확히 증언하면 영화 연출자의 입장을 다시 고민하는 계기로 삼는 동시에 제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며 “폭력 부분 외에는 시나리오 상에 있는 장면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일로 상처를 받은 그 배우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김기덕은 얼핏 보기엔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히 증언하면’이라는 단서로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피해자가 주장한 바를 명백히 인정한 부분은 엿볼 수 없었다. 이에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는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돼,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서혜진 변호사, 안병호 전국영화노조위원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박재승 찍는페미 대표,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백재호 감독,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위은진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다. 이를 포함, 총 14개 단체가 대책위를 꾸렸다.
이번 ‘김기덕 사건’에서는 영화계에 만연한 여배우들의 성적 수치심 문제가 화두였다. A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책위는 김기덕뿐만 아니라 예술계에 만연한 다양한 인권침해, 그로 인해 속앓이 할 수밖에 없던 배우들의 사례를 짚으며 관련 법안 정례화를 도입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촉구했다.
A 씨는 이미 2013년 사건 발생 직후 작품에서 하차해 피해사실에 대해 여성단체,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상담을 했다. 하지만 ‘언론에 금방 알려질 것이다’, ‘무고죄로 고소당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반응들로 4년간 트라우마를 호소하다가 올해 1월에서야 영화인신문고에 진정 접수, 7월 영화계-여성계-법조계로 이뤄진 공동대책위 구성, 김기덕 감독에 ‘강요, 폭행, 모욕,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A 씨와 유사한 사건은 현재까지 500여 건 이상이 접수된 상태. 대책위는 “윤리와 도덕, 상식을 벗어나는 관행이 바로 잡아지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문화 예술계에 만연되어 있는 다양한 인권 침해를 바로잡길 원한다”며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했다.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자신의 작품 세계로 삼아왔던 김기덕. 이미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가한 폭력의 실상은 얼룩지고 말았다. 김기덕이 영화 속 가해자가 곧 자신이 될 현실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7년 8월 3일 <김기덕 감독, 여배우에 피소…“뺨 때리고 베드신 강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55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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