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만큼 행복한 직장인이 있을까.
한국마사회 해외사업부에서 영어 경마 아나운서로 일하는 영국인 앨러스테어 미들턴(37·사진)은 지난 2005년 평범한 회사원으로 처음 한국에 왔다. 사실 평범한 회사원은 아니었다. 경마 종주국인 영국에서 살 때부터 열광적인 경마 팬이었던 그에게 경마는 한국 생활에서도 활력소였다. 한국 경마를 내용으로 하는 개인 블로그(https://korearacing.live)를 운영한 지 10년이 됐다. 검색엔진 구글에 ‘Korea horse racing(한국 경마)’을 검색하면 가장 위에 소개되는 이 블로그는 미국과 영국의 경마 전문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들턴에게 경마가 직업이 된 계기가 찾아왔다. 한국마사회가 한국 경마 실황을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다. 한국마사회는 2014년 6월 싱가포르 수출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와 호주·홍콩에 이어 최근에는 미주 지역에까지 수출을 확대했다. 해외에 송출되는 경마 실황을 영어로 중계할 아나운서가 필요했고 미들턴은 주저 없이 지원해 2014년 12월부터 해외 수출 경마 중계 아나운서로 맹활약해왔다.
미들턴이 말하는 경마의 매력은 ‘관여도’다. 다양한 스포츠의 마니아라는 그는 “경마의 경우 베팅하는 순간 스스로 그 경주의 설계에 함께 뛰어들게 된다”면서 “경마는 다양한 추리요소를 맞춰 우승마를 완성하는 퍼즐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법. 미들턴은 더 이상 한국 경마에 베팅을 할 수 없다. 마사회 직원의 베팅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이다. 그래도 그에게 경마는 여전히 흥미로운 퍼즐이다. “추리가 들어맞았는지, 틀렸다면 무엇 때문인지, 내게 부족한 퍼즐 조각은 무엇인지 등을 끊임없이 탐구하다 보면 베팅하지 않아도 정말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답니다. 경마는 통계와 수학을 활용한 지적인 게임으로 편의점에 가 복권을 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죠.”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마를 지켜본 미들턴은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에 비해 한국 경마는 크게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말의 수준도 그렇지만 기수들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최근 데뷔한 젊은 기수들을 보는 게 즐겁다”는 그는 특히 지난해 국제 경주로 치러진 코리아컵을 보면서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렛츠런파크(경마공원)에 가족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원 시설과 이벤트 공간이 갖춰진 것도 변화로 꼽았다.
경마를 축제로 즐기는 영국의 분위기를 소개한 미들턴은 “큰 잠재력을 가진 한국 경마가 수출로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경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데도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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