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광주 태생 42세 문00씨랑 아는 사이시죠? 얼마 전 검거된 금융사기단 소지품에서 본인 명의로 된 대포통장이 발견됐습니다.”
목소리는 최대한 내리깔고 고압적으로 몰아붙인다. 스스로를 ‘2017조사5027호 안건’을 조사하고 있는 ‘첨단범죄수사 1팀장검사’로 소개한다. 주변에 잡음이 들리면 피해자입증자료로 채택이 안 된다며 혼자 전화를 받도록 유인한다. 겁 먹은 피해자에게 “사건 내용을 은닉하려 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양념도 잊지 않는다. 서대문경찰서가 최근 두 달 간 추적해 검거한 ‘검찰·수사관 사칭 보이스피싱 금융사기단’의 실제 범행시나리오다.
서울서대문경찰서는 검사 및 검찰수사관을 사칭해 200여명에게 수십억원을 뜯어 낸 조모(27)씨 등 보이스피싱 조직원 6명을 검거해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조씨 일당은 지난해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약 1년간 무작위 전화로 검사와 검찰사무관을 사칭해 피해자 193명에게 약 26억원을 뜯어낸 혐의(사기 등)를 받는다.
이들은 중국 내 전화금융사기 조직에 가입한 뒤 콜센터 사무실에 모여 개인정보 수집·발신번호 조작·콜센터상담 등 역할을 분담했다. 콜센터 상담은 통상 2인 1조를 이루어 한 명은 검찰사무관으로, 한 명은 검사로 사칭해 운영했다.
주로 검찰사무관 역할을 맡은 조직원이 피해자에게 “당신의 계좌가 범죄용 대포통장 계좌로 이용됐다”며 겁을 준 뒤 전화를 건네주면 검사를 사칭한 조직원이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계좌에 있는 돈을 안전한 계좌로 옮겨라”며 계좌를 불러주거나 “금감원 직원을 만나 건네주라”고 속이는 방식이었다.
조씨 일당은 이 같은 방식으로 대포계좌로 돈을 송금 받거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직접 돈을 건네 받았다. 이들은 이외에도 가짜 검찰청 사이트와 검찰청 공문을 만들고 대포계좌 모집도 별도 업무로 관리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조직은 조선족 및 한국인 총책이 관리했으며 조직원들은 모두 한국의 고향 선후배 사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아직 검거되지 않은 해외 거주 피의자들을 추가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이라며 전화를 걸어오면 담당자의 소속과 이름을 꼭 확인하고, 기관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실제 담당자가 맞는지 재차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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