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택 옥상. 높은 오피스텔 건물 가운데 자리한 50평가량의 옥상 텃밭에는 상추와 고추 등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1년째 텃밭을 가꿔온 주부 박모(45)씨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는데 시중에 팔리는 유기농 농산물은 안 봐도 뻔하다”며 “직접 내 손으로 키우고 가꾼 음식을 먹어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친환경(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면서 소비자 불신이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이 부실한 관리로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해 최근 수년간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살충제 계란’ 악재까지 만나 사면초가인 상태다. 자주 먹는 농산물은 사 먹지 않고 아예 주말농장이나 텃밭에서 직접 키우는 소비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 생산량은 지난 2010년 116만1,819톤에서 해마다 줄어 지난해 57만1,217톤으로 6년 만에 반토막 났다.
친환경농산물 생산량이 급감한 것은 허위·과장 표시가 판을 치면서 친환경 유기농 제품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관리원이 지난해 3월부터 한 달간 친환경 민간인증기관과 인증농가를 점검한 결과에서도 친환경 민간인증기관 64곳 가운데 2곳이 부실인증으로 적발됐다. 친환경 인증농가 가운데 474개 농가가 허위 영농일지로 인증을 받아 인증 취소 처분을 받기도 했다. 가짜 친환경 유기농 제품은 아이들의 급식에도 진짜로 둔갑해 오르고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에는 광주·전남 일대에서 일반 마늘을 친환경 농산물인 것처럼 속여 서울의 학교급식업체에 1,159회에 걸쳐 납품한 농산물 유통업자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서울의 한 학부모는 “아이들도 먹는 음식을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속이는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며 “마트나 슈퍼에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적혀 있는 상추나 오이를 보면 값만 비싸게 받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집 주변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아예 필수 농산물을 자체 조달하기도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도시농업 참여 인구가 2010년 15만명에서 지난해 160만명으로 6년간 10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텃밭 면적 역시 104㏊에서 1,001㏊로 늘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한 주부는 “몇 해 전부터 외곽에 땅을 얻어 오이·가지·상추·토마토 같은 농작물들을 심어 키우고 있다”며 “직접 친환경 농사를 해보니 벌레가 파먹는 경우가 많고 작황도 별로 좋지 않은데 시중에서 파는 친환경 농산물은 상품성이 너무 좋아 가짜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김영규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친환경 농산물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원인은 산업적인 성장 패러다임에 몰두해 양적 성장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며 “유기농업 정신에 입각해 소비자에게 어떻게 질 좋은 농산물을 제공할지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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