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주머니’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쓰려고 더 강력한 부동산대책을 주머니에 넣어 두고 있다”고 밝히고 난 뒤부터다.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다.
정부 정책의 집중포화에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휘청거리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최근 서울 잠실의 한 재건축 추진단지는 8·2부동산대책 후 최대 1억7,000만원이나 떨어진 가격에 실거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여기에 서울시까지 강남 재건축을 압박하고 나섰다. 최고 49층으로 재건축하겠다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사업 계획안에 대해 아예 심의조차 거부하면서 ‘투자 0순위’로 불렸던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다. 8·2대책에 포함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확대가 남아 있다. 오는 10월까지 상한제 적용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로드맵이다. 민간 분양가상한제는 문 대통령의 주머니 속 강력한 대책 중 하나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민간 분양가상한제 확대의 배경은 명확하다. 강남권 재건축을 중심으로 무섭게 치솟는 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고 오른 집값은 또다시 분양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집값 잡기에 사활을 건 정부로서는 충분히 유혹을 느낄 만한 정책이다.
그런데 분양가상한제가 집값을 잡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분양가가 과연 주변의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느냐는 점이다. 일정 기간 분양가가 치솟았고 비슷한 시기 강남권 집값이 급등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양가 상승이 집값을 끌어올린 것인지, 아니면 오르는 집값이 분양가를 견인한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없다.
고분양가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바로 정책 효과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줄어드는 일반분양 수익만큼 사업 주체인 조합원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문제는 수혜자다. 웬만큼 규모가 큰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아니라면 일반분양분은 기껏해야 몇 백 가구다. 값싼 분양가의 혜택은 일부 당첨자의 몫으로 한정된다는 의미다. 아무리 청약제도가 무주택자의 당첨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한다지만 3.3㎡당 4,000만원을 훌쩍 넘는 강남 아파트 수요자를 ‘서민’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다. 대출 규제까지 강화된 마당에 고가의 강남아파트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억제한다면 자칫 일부 여유계층의 배만 불리는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 이명박 정부 당시 강남권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한 보금자리주택은 ‘반값 아파트’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과적으로 주변 집값을 잡지도 못했고 일부 당첨자의 배만 불리는 로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채권입찰제라는 보완장치가 있기는 하다. 분양가상한제로 시세와 분양가 차이가 클 경우 차액만큼 채권을 매입하도록 해 이익을 환수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미 임대주택 건립, 공원·도로 기부채납 외에 내년부터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까지 겹쳐 사업성이 악화하는 실정이다. 추가로 채권입찰제까지 도입할 경우 지나친 사유재산권 침해가 될 소지가 있다.
주택 시장 역시 보이지 않는 손은 어느 순간 작동을 한다. 2000년대 초반에 오르는 집값만 믿고 건설사들이 고분양가의 중대형 아파트를 한꺼번에 쏟아냈다가 여전히 미분양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이 대표적 예다.
좋은 의도만으로 훌륭한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집값이 비싸다고 시장 가격을 왜곡하면서 분양가를 억지로 끌어내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부작용이 효과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그냥 주머니에 넣어 놓는 것이 낫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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