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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수렁에 빠진 트럼프의 아프간 정책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승리 위한 전술적 접근 없이

병력 증원 등 '판돈'만 키워

반세기 전 베트남戰 전략 재탕





미국 외교 정책의 파탄을 보여주는 가장 심각한 징후로 아프가니스탄 정책이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다.

수십만 명의 미군이 투입된 15년간의 전쟁을 치른 후 기존의 아프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한 새로운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러나 권좌에 앉은 뒤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행정부의 아프간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요란스레 선언했고 그 결과 미국은 옴짝달싹 못 한 채 아프가니스탄전의 수렁에 영구히 갇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그가 이전 행정부에서 물려받은 정책의 차이는 현지의 미군 지상군 병력이 4,000명 증원되는 것밖에 없다. 트럼프는 미국 주도의 국가 건설을 피하고 테러 방지에 역점을 두며 아프가니스탄의 부패를 종식시키고 파키스탄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이제 아프간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 건설에 집중해야 할 때가 됐다”며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전략과 판이한 접근법을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많은 사람에게 트럼프의 아프간 발언은 이전 행정부 정책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2011년 당시 합참의장이던 마이클 멀린 제독이 의회에서 한 극히 이례적인 돌직구 증언을 떠올리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위험한 테러그룹 중 하나인 하카니네트워크를 “명명백백한 파키스탄 정보부의 앞잡이”라고 증언했다.

같은 해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파키스탄으로 날아갔다. 힐러리의 말을 빌리자면 파키스탄 정부에 ‘하카니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고강도의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은 파키스탄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취한 일련의 압박 조치에 격분한 파키스탄 정부는 그로부터 7개월 동안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의 배급로를 폐쇄했다.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트럼프의 아프간 정책에 지지를 표명한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미국은 시계를 가지고 있는 반면 탈레반은 시간을 갖고 있다”는 진부한 격언을 사용했다. 라이언 의장은 이어 “만일 우리가 시간표를 정해놓는다면 탈레반은 시한이 만료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아프간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탈레반이 미국이 정한 시한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곳이 그들이 사는 땅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얻은 군사적 교훈을 정리해 저서로 남긴 해리 서머스는 사이공 함락 직전인 1975년 월맹군 장교와 자신이 나눈 대화로 책머리를 장식했다. “알다시피 우리는 결코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다”는 서머스의 말에 월맹군 장교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베트남 현지인들은 한 가지 사실, 즉 외국인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프간전의 예리한 옵서버 가운데 한 명인 뉴요커지의 덱스터 필킨스에게 질문을 던지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을 좋아하지 않으나 그보다 아프간 정부를 훨씬 더 싫어한다. 우리는 아프간 국가 건설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라를 세우지 않고는 군을 육성할 수 없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는 있어도 군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재의 아프간 정부를 위해 그 누가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는가.”

현지에 주둔하는 미군 지휘부는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아프간 정부를 ‘전국적으로 펼쳐진 부패한 그물’이라고 부른다. 군사용어를 연상시키는 ‘VICE’라는 두문자어(acronym)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수직적으로 통합된 범죄집단(Vertically Integrated Criminal Enterprise)’을 일컫는다.

유엔과 미국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정책 고문으로 활동하는 바넷 루빈은 이를 조금 달리 설명한다. “아프간 국가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없다. 미국 정부의 도움 없이는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파키스탄의 도움 없이는 안정된 사회를 이루지 못한다. 또 이란과의 교역과 교류 없이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1조달러 상당의 천연광물이 매장돼 있다는 보도에 대해 그는 “그보다 훨씬 많은 광물자원이 달에 묻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시장에 가져오느냐가 문제”라며 “아프간 자원을 시장에 내놓으려면 우호적인 이웃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루빈은 “트럼프의 접근법은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며 “지역의 다른 세력들, 특히 러시아·중국과 이란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묵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과 닮은꼴인 아프간 정책의 판돈을 키웠다. 더 많은 전비와 폭탄과 병력을 투입하고 파키스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아프간 국민에게 엄격한 사랑을 베풀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패전을 모면하기 위해 미군 장성들이 고안한 전술적 접근법으로 승리를 위한 전략은 그림자조차 담겨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미국은 당시보다 낮은 휴먼 코스트로 반세기 전의 베트남전 전략을 그대로 재탕하고 있다.

돌 구덩이(quagmire-lite) 전략이라고 불러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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