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극본 이재곤, 연출 박만영 유영은, 이하 ‘맨홀’) 8회에서는 사랑을 얻기 위한 봉필(김재중 분)의 고군분투와 좌절이 그려져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러브 라인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며 극의 재미는 더욱 높아졌고, 이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 역시 물이 올랐다.
앞선 방송에서 입대 하루 전으로 타임슬립을 했다. 봉필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친구 진숙(정혜성 분)과 한 약속까지 깨면서 28년 짝사랑 수진(유이 분)에게 마음을 전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차마 수진의 얼굴을 보고 고백을 할 수 없었던 봉필이 수진의 카메라에 고백 영상을 찍어 뒀지만, 이 카메라를 수진이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 처음 카메라를 주운 진숙은 사실 학창시절부터 봉필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질투심 등 묘한 감정에 휩싸인 진숙은 카메라를 수진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운명의 장난처럼 사진기를 주운 건 재현(장미관 분)이었다. 봉필이 시간여행을 시작하기 전 현재에서 수진과 재현은 결혼식을 불과 일주일 남겨둔 예비부부 사이.
봉필의 고백 영상이 담긴 카메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수진과 재현 사이의 오작교가 되고 말았다. 카메라를 주운 재현이 우연히 수진과 만나 이를 돌려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일찍부터 시작됐고, 봉필이 돌아온 현재에서 재현은 수진에게 공개 청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과거를 바꿔도 수진과 함께하는 현재가 만들어지지 않자 봉필은 좌절을 느꼈다. 봉필은 늦었지만 수진의 집 앞에 찾아가 “28년간 단 하루도 거른 적 없어. 끼니는 거른 적 있어도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은 거른 적 없다고”라며 가슴 찡한 고백을 전했다. 하지만 수진은 봉필의 절절한 고백에도 “이제 내 마음이 변했다”며 차갑게 자리를 떠났다. 수진은 방에 홀로 남아 과거 봉필, 수진, 진숙 세 사람이 사진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봐 그녀가 봉필의 마음을 모질게 거절한 이유에 봉필을 향한 진숙의 마음이 있음을 드러나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수진을 향한 봉필의 일편단심 애절한 사랑과 수진, 진숙의 진심이 드러나며 ‘맨홀’은 한층 더 재미의 밀도를 높였다. 봉필의 진심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두 사람 사이가 왜 쉽게 이어질 수 없었는지가 하나하나 드러나며 극에 대한 시청자들에 대한 몰입도도 한층 상승됐다. 여기에 진숙을 바라보는 석태(바로 분)까지 그 마음을 조금씩 표현해 가면서 ‘맨홀’의 러브라인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재중, 유이, 정혜성, 바로 등 주연 배우들은 한층 깊어진 드라마의 감정선에 맞게 진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그간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던 재현의 의외의 면모가 그려졌다. 방송 말미 봉필은 재현을 찾아가 자신의 고백 영상을 왜 지웠느냐며 따졌던 상황. 집으로 돌아온 재현은 컴퓨터에 저장 된 봉필의 고백 영상을 보며 “이 자식 자꾸 신경 쓰이게 하네”라고 독백했다. 나지막한 읊조림과 영상을 보는 서늘한 표정이 어우러지며 보는 이들까지 오싹하게 만들었다. 수진이 이런 재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수진을 사이에 둔 봉필과 재현의 신경전은 어떻게 마무리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봉필의 ‘필生필死’ 랜덤 시간여행을 그린 ‘맨홀’은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에 KBS에서 방송된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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