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조는 잘 지내?” 생뚱맞게도 명인은 기자에게 노라조의 안부를 물었다. 81세 국악인이 가요계에서 B급 정서를 대표하는 남성 듀오 노라조라니. 한술 더 떠 명인은 “나 노라조 좋아해. 싸이도 좋아하고. 재미있잖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황병기와 노라조의 인연은 뜻밖에도 공연에서 맺어졌다고 했다. 2009년 그가 예술감독으로 연출한 ‘뛰다, 튀다, 타다’ 공연에 노라조가 게스트로 참여했던 것. 당시 명인은 노라조의 ‘슈퍼맨’과 국악이 과연 어울릴까 하는 주변의 불안을 과감하게 떨치고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기자에게도 2009년 명인의 수업을 들은 추억이 있다. 당시 황병기 교수는 강의 때 늘 자신이 연출한 공연을 보도록 했는데 당시 국립극장에서 예술감독으로 공연을 담당했던 ‘뛰다, 튀다, 타다’에 수강생들을 초청했다. “교수님 그때(2009년)에 비해 오히려 더 젊어지신 것 같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명인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때가 훨씬 젊었지, 이젠 늙었어. 허허허.”
8년여 만에 다시 대면한 명인은 학생들을 휘어잡던 특유의 입담 역시 여전했다. “작곡하신 곡들 중 국악에 첼로를 추가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 많은데 어떻게 첼로 등의 서양 악기와 접목할 구상을 하셨는지”라고 묻자 황 교수는 “나도 몰라”라며 허허 웃었다. 황 교수는 이어 “느낌대로 하다 보니 그렇지.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의 시인데 그 곡에는 첼로가 어울릴 것 같아 넣었고, 우리는 하나라는 곡에는 배경처럼 화음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오르간을 넣었고, 그뿐이야”라고 설명했다.
81세 황병기는 젊은이와 격의가 없다. 46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명인과 친구로 지낸다는 첼리스트 장한나는 두 사람의 우정을 이렇게 말했다. “보편적으로 보자면 선생님과 난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 하지만 근본적인 음악은 진정으로 생각을 자극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어느 또래 친구들보다 더 쉽게 선생님과 친해질 수 있었던 같다.” 명인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장한나나 서울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자신이나 음악을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친구가 별거냐, 기회가 되면 만나서 차 마시고 대화가 통하면 그게 친구지”라고 말하곤 한다.
젊은 음악인에 대한 명인의 애정도 남달랐다. “내가 보기엔 젊은 작곡가가 전부 다 나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어 “(후배 작곡가들에게) 정말 해줄 말이 없어.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음악이고 그저 난 바라보기만 할 뿐이야”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예술계의 큰 스승으로 예술계에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라고 묻자 이에 대해서도 “내 특징 중 하나가 해주고 싶은 말이 전혀 없다는 거야”라며 웃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사진 이호재 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