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호프만은 소비자에 대해 “이기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한 인간이 되지도 못한 존재”라 표현했다.
설혜심 연세대 교수가 쓴 ‘소비의 역사’는 호프만의 견해에 반론을 편다. 심 교수는 소비에 대해 “‘소비적인 논쟁’, ‘생산적인 관계’라는 대비 속에 투영된 함의처럼 소비는 생산과 비교해 그 의미를 폄하당했다”고 분석했다. 더 나아가 “소비는 생산보다 우리의 삶에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소비는 그 시대의 사회상, 이데올로기, 상상력, 힘의 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다”고 강조한다. 현대인을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소비하는 인간)’라 부를 만큼 매일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지금, ‘소비’를 외면하면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다.
복식의 변화는 소비를 통해 그 당시 사상을 볼 수 있는 한 예다. 불과 300년 전까지 해도 남성은 여성보다 화려한 옷을 입었다. 귀족들은 하이힐을 신고, 보석으로 된 단추로 치렁치렁한 옷을 입었고, 이러한 옷들을 여성보다 2~3배 많이 소장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 명예혁명으로 주류가 된 부르주아들은 사치를 ‘귀족 문화’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경멸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절약’, ‘금욕’과 같은 가치가 숭상되고, ‘사치’는 척결해야 할 적폐로 인식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 남성의 복장은 단순해졌다. 현대 남성 복식의 기초가 된 재킷, 바지, 조끼로 이루어진 정장이 생겨난 시기 역시 이때다. 하지만 이러한 남성 정장은 남들에게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욕망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화려한 여성복의 유행은 마치 남성복이 포기한 모든 것을 여성복에 전가한 것처럼 보였다. ‘적폐’로 취급한 ‘호화’, ‘사치’라는 개념을 여성에게 넘긴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수수한 옷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답고 호화롭게 치장한 연약한 존재이기를 요구했다. 당연하게도 이런 화려한 옷들은 활동성에 제약을 줬고, 여성은 남성들이 사주는 옷을 입는 가장 큰 장식품에 불과했다.
이런 유행 속 등장한 미국 방문판매 화장품 회사 ‘에이본’의 방문판매원 ‘에이본 레이디’는 여성도 경제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여성 판매원들이 여성 고객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남성이 사주는 물건을 수동적으로 받아 쓰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수동적인 소비자였던 여성을 능동적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로까지 나아가게 만든 것이다. 또한 2차세계대전 당시 에이본 레이디는 미국 채권 등을 판매, 정치 활동에까지 발을 넓히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화장품은 여성들끼리 사고파는, 결국 여성의 대상화를 강화하는 물품이었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에이본레이디의 성공은 여성이 남성의 리그에 진입하는 장벽을 더 높인 셈”이라 한계를 규정했다.
가습기 살균제부터 생리대, 달걀까지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책은 ‘소비’라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학, 사회학 그리고 정치학까지 분석한다. 다양한 사례들과 흥미로운 삽화, 사진들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만든다. 하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무언가 아쉽다.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호모 콘수무스’가 어떻게 행동하고 진화할지에 대한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2만5,000원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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