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를 달아야만 전차가 아니다. 군사대국일수록 포를 장착하지 않은 전차를 많이 운용한다. 장애물 개척 전차나 구난차는 그 자체의 살상력이 없지만 부대 전체의 전투력을 끌어올린다. 외형은 전차처럼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하거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색 전차와 그 운용 방식을 소개한다.
◇초중(重)전차(super heavy tank) 마우스(MAUS)=독일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시험 제작한 초중전차. 무게 192톤으로 당시 전차보다 4~5배 이상 무거웠다. 요즘의 최신 전차에 비해서도 3~4배 무겁다. 가장 강력한 모순(矛盾), 즉 강한 창과 방패를 갖추다 보니 무게가 늘어났다. 세상의 어떤 전차도 박살 낼 수 있는 129㎜ 주포와 76㎜ 포를 갖췄다. 장갑도 두꺼워 당시 전차로는 파괴가 불가능했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이름은 마우스(생쥐)였다. 하지만 이 전차는 생쥐처럼 날쌔지 않았다. 시속 11㎞라는 속도 때문에 자력으로 전투에 임할 능력이 떨어졌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전차에 많은 기대를 걸었으나 시제차량 몇 대만 제작되고 실패로 끝났다.
◇전차 3요소 두루 갖춘 주력전차(MBT) 등장=화력과 방어력, 기동력. 전차가 갖춰야 할 3대 요소다. 초대형 전차 마우스는 화력과 방어력에 치중하고 기동력은 포기한 전차였다. 2차대전 직후까지 세계 각국은 각기 다른 체급의 전차를 개발해 작전 환경에 맞게 투입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기동성이 중시되는 전투에서는 화력과 방어력은 떨어져도 빠른 경(輕)전차를, 전차끼리 싸우는 현장에는 중(重)전차를 내보내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부터 이런 구분이 없어졌다. 기술 발달로 중(中)전차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중전차는 공격과 수비·주루까지 잘하는 야구선수와 비교되며 ‘주력전차(Main Battle Tank)’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장 특이한 주력전차 스웨덴 S 전차=스웨덴이 1967년부터 생산한 strv 103전차(일명 S전차)는 전차 역사상 가장 특이한 주력전차로 손꼽힌다. 포탑이 없기 때문이다. 긴 전차포가 차체에 고정돼 조준하려면 차체를 조금씩 움직였다. 이 전차의 높이는 1.9m. 어떤 전차보다 낮았다. 중립국을 표방하는 스웨덴이 공격받을 경우 낮게 매복해 적의 전차를 격멸하겠다는 개발 사상이 깔려 있다(우리 군의 K계열 전차도 높이가 낮은 전차로 유명하다). 미국이 1975년 S전차와 당시 최신형인 미국제 M-60A1E3 전차를 비교 분석한 결과 사격 정확도에서 S전차가 훨씬 앞섰다. 다만 목표물 발견에서 사격까지의 시간은 0.5초 뒤졌다.
◇레이더·대공포·미사일까지 전차 차체에 탑재=0.5초 차이는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시각. 세계 각국은 탐지, 대공 보호 및 대공 화망 구성도 전차 위주로 짰다. 전차 포탑을 떼어내 레이더 탑재 전차로 개조하고 대공용 기관포나 미사일도 전차 차체나 대형 장갑차에 달았다. 자주포와 장갑차 등 기동무기를 구매할 때도 주력전차와 같은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지가 주요 평가항목이었다.
◇공병전차, 구난전차 없으면 전력 반감=1973년 제4일 중동전 골란고원 전투에서 시라아군의 초전 승리와 이스라엘의 막판 대역전이 모두 이들 장비 덕에 가능했다. 시리아군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대전차호를 가교전차로 넘었다. 이스라엘은 각종 구난전차와 구난장갑차를 동원, 효율적인 근접지원 체계를 가동한 끝에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스라엘군 전차 중에서는 다섯 번 피격될 때마다 골란고원 바로 밑의 야전정비소를 수리받아 전선에 투입된 것도 있다. 야전 정비가 확실하다면 보유무기보다 몇 배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전차보다 비싼 장애물개척 전차=전차의 적이라면 모르되 전차의 친구는 많다. 장애물을 확인하고 지뢰를 찾아내거나 폭파하는 장애물전차가 없다면 전차부대 전체의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장애물개척 전차를 중시해 최근 군내 명칭까지 바꿨다. 공병전차 또는 장애물개척 전차라는 이름을 ‘강습돌파전차(Assault Breacher Vehicle)’로 바꿨다. 불도저와 레이더탐지기 등 각종 첨단기기가 달린 강습돌파전차의 가격은 일반전차의 두 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과다 대안, 차륜형 탱크=전차부대 운영에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은 각국이 하나같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전차에서 장갑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궤식(캐터필러) 일색으로 꾸민 게 보기는 좋지만 돈이 많이 들어갔다. 이에 따라 각국은 일찍부터 바퀴 달린 탱크 도입 여부를 저울질해왔다.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무한궤도가 아니라 바퀴 달린 전차를 개발 운용하고 있다. 최근 일본도 바퀴형 전차를 선보였다. 바퀴형 전차는 무한궤도형에 비해 획득과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낮다. 무한궤도형보다 야지 주행능력이 떨어질 뿐 포장도로에서는 훨씬 뛰어난 기동성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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