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큰 화두를 던진 지 만 4년이다. 일대일로는 현대판 실크로드다. 중동은 고대문명과 주요 종교의 발상지이면서 아시아(중동은 제외)와 유럽·아프리카 세 대륙이 연결되는 교차점에 있어 세계 교역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그런 면에서 여러 세력이 충돌해온 지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현지에서 바이어들을 오찬에 초대했다. 대화 중 훌라구 칸이 언급됐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그는 1258년 이슬람 문명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한 아바스왕조의 바그다드를 궤멸시켰다. 1260년에는 요단강을 건너 갈릴리호수 아래 대평원까지 진격했지만 거기서 이집트 맘루크왕조에 진다. 결국 유프라테스강이 중동 몽골제국의 서쪽 한계가 됐다. 이것이 역사상 아시아가 중동 가장 깊숙이 진출한 경우다. 역사는 집단으로 기억되고 세대로 전해 내려온다. 일대일로도 역사 기억의 재현이고 재구성이자 고도화다. 몽골이 바그다드를 파괴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후 몽골제국 때 비단길이 가장 붐비는 세 시기 중 하나였다.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까지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몽골제국에 의한 교역로 치안과 제도화 때문이다. 다른 두 시기는 중동 파르티아제국(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등)-한(漢)-로마제국 때와 이슬람제국-당송(唐宋) 시대였다. 국제정세의 안정이 일대일로 번영에 선결 요건임을 시사한다.
중동에 대한 중국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있다. “파르티아제국은 수백 개 지역을 지배한다. 밀 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만든다. 시장이 있고 화폐는 은화를 쓴다.”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 시대 서역으로 원정 나간 장건이 거기서 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문헌상 중동 땅을 처음 밟은 중국인은 반초가 97년 파견한 사신 감영이다. 그는 파르티아를 거쳐 지금의 시리아 해변(일설 페르시아만)에 다다른다. 로마까지 가려 했지만 실현하지 못하고 단지 들은 것을 후한서로 전하고 있다. “로마제국은 금·은·귀금속을 많이 생산하고 진주·옥·유리·비단 등을 갖고 여러 나라와 교역한다.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려 해도 중간에서 비단 거래를 통제하려는 파르티아가 막고 있다.” 당시 로마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수준까지는 못 됐고 ‘세리카(비단)’라고 막연히 지칭했다. 물론 가운데 있던 중동이 양쪽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때는 이미 실크로드가 꽤 형성됐다. 로마인들이 로마제국 재정의 10%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실크에 지출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는 정도다. 실크가 주요 품목이어서 실크로드로 명명된 것이지 그것만 거래된 것은 아니다. 금은·귀금속·유리·도자기·향신료·직물·광물·대추야자·곡물·상아·낙타·말 등 무척 다양했다. 종교도 비단길로 빠르게 전파됐다. 무수한 신과 종교로 가득하던 세상이 불과 수백 년 안에 소수의 종교로 재편된 것도 그물망처럼 발달한 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육로가 비단길로 먼저 이용됐지만 바닷길도 이미 있었다. 기원전부터 아랍인은 계절풍을 이용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나 인도 서안까지 왕래했고 한(漢)나라는 지금의 베트남과 말라카해협·인도네시아 등을 거쳐 인도 동안까지 항행하기도 했다. 당나라 승려 의정과 신라 혜초도 이 바닷길을 이용했다. 해상무역은 당대(唐代)부터 더욱 번성한다. 당시 선박 한 척의 운송능력은 낙타 2,000마리에 필적했다.
당나라는 서역까지 진출한 이슬람제국 아바스왕조와 751년 탈라스(현재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계)에서 충돌하게 된다. 아바스왕조가 승리함으로써 중앙아시아가 현재까지 이슬람권이 됐고 포로로 데려간 당나라 사람을 통해 제지술이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도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15세기까지는 해상무역이 주로 아랍인 손에 있었다. 인도양 일대가 이슬람권이 된 배경이고 중국 무역항인 광저우와 취안저우에는 이슬람 사원과 자치구도 있었다. 14세기 모로코 출신의 이븐바투타가 25년 동안 중국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도시를 유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이슬람이 곳곳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에 사상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15세기는 동서양 역사의 분수령이다. 실크로드는 희미해지고 서양 위주로 교역로가 재편되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됐다. 이제 시안에서 발원한 일대일로 장강이 중동 물줄기에 변화를 일으킬 참이다. 새로운 일대일로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오태영 KOTRA 텔아비브무역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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