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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판결 후폭풍] ① '기아차 판매 호황 지속' 전제로 "1조 줘도 된다" 자의적 판단

<법원 판결서 드러난 문제점>

② 글로벌 금융위기 반등효과 따른 부채비율 감소 간과

③ 과거 사례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 판단 논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판부가 기아차의 현 상태보다 과거 호황기 지표를 중시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재판부가 이번 판결의 주요 근거로 삼은 지난 2008~2015년 실적은 기아차가 전 세계 판매량을 두 배로 불린 시기다. 회사 역사상 최대 호황기가 앞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재판부의 인식이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문을 보면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근로자들이 청구한 추가 수당을 모두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2008~2015년과 동일한 시장 상황이 향후 5년간 벌어지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포함한 사업계획이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도 기아차의 재정·경영상태가 크게 악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각종 수당 소급분을 추가 지급하면 오는 2020년 연간 영업적자가 2,763억원에 이른다는 기아차의 전망도 인정하지 않았다.

기아차 근로자 2만7,400여명은 추가 수당 1조926억원을 달라며 2011년 소송을 걸었고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회사가 4,223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회사 측은 추가 소송 등을 고려하면 잠정 부담 액수가 1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008~2015년 상황이 향후 5년간 벌어져도” 기아차가 추가 수당을 1조원 이상 부담할 수 있다고 봤다. 또 기아차가 2008~2015년 잉여이익금이 1조~16조원에 달했고 근로자들에게 3,291억~7,871억원에 이르는 경영성과급을 해마다 지급했다고 강조했다. 마치 이 기간 기아차가 실적이 좋지 않았어도 꾸준히 수천억원대의 경영성과급을 줄 수 있었다는 해석으로 읽힌다.

1조원의 통상임금 부담을 떠안은 기아자동차의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 긴장감이 돌고 있는 가운데 1일 회사 측 차량이 공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광명=연합뉴스


실상은 다르다. 기아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4년까지 사상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2009년 153만대이던 완성차의 전 세계 판매량은 2014년 304만대로 뛰었다. 2009년 29조원이던 연결회계 기준 매출액은 지난해 52조원을 넘겼다. 이 같은 실적을 도약대 삼아 기아차는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와 별도로 세계 10대 완성차 기업에 올라설 수 있었다.

재판부는 이 기간 기아차의 부채비율이 169.14%에서 63.70%로 낮아진 점도 판단의 근거로 보탰다. 하지만 기아차의 부채비율 개선은 실적 고공행진 효과와 2008년 금융위기 충격에서 반등한 세계 경기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결국 재판부는 기아차가 1조원을 웃도는 추가 수당을 감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입증하려고 ‘특수한 호황’을 근거로 삼았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더구나 기아차는 2014년 이래 정체에 빠졌다. 판매량은 3년째 300만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으며 부채비율도 2013년 55.86%에서 계속 오름세다.



기아차의 미래도 결코 밝지 않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현지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52% 급감한 43만947대에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에서 생산한 기아차에 30%의 고율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기아차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50%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분야의 R&D 비용 역시 해마다 수천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2008~2015년의 호황이 다시 찾아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근로자들이 이를 반영한 추가 수당을 청구한다고 해도 기업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이다. 법조계는 통상임금 확대로 인한 추가 수당 지급도 개별 기업이 현재 감당할 수 있을지 따진 다음에 가능하다는 판결이라 해석한다.

이와 관련해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의 1심 재판부가 과거 당기순이익·잉여금·부채비율 등에 지나친 가중치를 두고 신의칙 위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이라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며 기아차의 현재·미래를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만 법무법인 율촌의 최진수 변호사는 “사드·통상 문제를 언급한 것은 기아차의 현 경영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재판부가 많은 고민을 했다는 방증”이라며 “기업이 실제 추가 수당을 낼 여력이 있는지 검토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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