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미국 내에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멍청한 짓” “자해행위”라는 표현을 써가며 한반도 위기가 극도로 고조되고 있는 지금은 한미 FTA 폐기를 거론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한국 통상정책은 멍청하다’는 제목의 5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어젠다가 지정학적 목표와 대립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가장 최근의 예는 한미 FTA를 폐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에 맞서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핵심 동맹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은 헨리 키신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단순한 무역 협정을 지키는 데도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왜 한국이 미국과의 군사 협약을 믿어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WSJ는 그러면서 “승자는 북한의 김정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SJ는 한미 FTA가 양국에 호혜적인 협정이라며 경제적 가치도 강조했다. 신문은 “한미 FTA는 미국 서비스업을 위한 시장을 열었다”며 “양국 모두에게 혜택으로 작용해왔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폐지 검토는 한미 동맹의 균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앨런 롬버그 전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미국이 한미 FTA를 철회하는 것은 자해행위”라며 “북한의 도발에 직면해 강력한 동맹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에 한미 FTA를 폐지하는 것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장은 “중국이 한미 양국 간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의 문제에서 이 균열을 악용하기 시작할 것이고 북한도 이를 일관된 비핵화 전략을 훼손하는 데 활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과 신경전을 이어갔다. 백 장관은 이날 무역업계 간담회를 마친 뒤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여러 가지 카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 여러분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분하고 당당하게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정협상까지 가기 전에 한미 FTA로 인해 양국이 얻은 이익들을 조사·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변재현기자·세종=박형윤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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