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해방촌의 언덕에 자리한 문학 전문 서점 고요서사의 중앙 매대 위에는 민음사의 ‘쏜살문고’ 시리즈 중 ‘무진기행’과 ‘인간실격’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책 위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동네서점에서만 파는 책’이라는 특별한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진주문고, 안산 대동서적, 청주 책이있는글터, 군산 한길문고, 춘천 광장서적, 속초 동아서적 등 지역 대표서점에 가도 비슷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서점 중앙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두 책이 독자를 기다린다.
맥주 한잔 기울이며 책 한권
2030 문화트렌드로 자리매김
젊은 창업가·경영인 관심 늘며
한 주에 하나꼴로 서점 생겨
지난 7월 130여개 전국 동네서점에서 소개된 두 권의 책은 대형서점은 물론 온라인 서점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동네서점 에디션’이다. 그야말로 발품을 팔아 동네의 작은 서점을 찾아가야만 구할 수 있는 이 책은 이미 3쇄를 돌파했고 두 권 합쳐 8,000부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동네서점에서만 팔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출판 업계로서는 의미 있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셈이다.
서점 업계에 제3의 물결이 일고 있다. 1980년대 종로서적·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의 전성기, 그에 이은 사회과학서점의 융성기, 그리고 요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동네 작은 책방의 창업 열기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지금의 창업 열기가 종로서적 등 대형서점의 등장, 지식인층이 주도한 사회과학서점의 등장에 이은 제3차 인재 유입 시기라 새로운 서점문화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요즘 서점 업계에서는 “한 주에 하나꼴로 서점이 생겨난다”는 말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을 통해 집계한 복합·전문서점 현황에 따르면 책 이외의 다양한 물품이나 식음료를 파는 복합서점은 지난해 11월 기준 102곳으로 전년 대비 31곳이 늘었다. 동네서점 지도 애플리케이션 제작사인 퍼니플랜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말까지 1년간 새로 생겨난 서점 수는 53개, 올해에만 31곳이다. 실제 숫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출판시장의 모세혈관이자 출판 다양화를 위한 교두보로서 작은 서점의 중요성을 재인식한 것도 크지만 가장 큰 요인은 급격하게 노화됐던 동네서점으로 젊은 창업자와 경영인들이 유입되면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2015년 가수 요조가 서울 북촌에 책방 무사를 연 데 이어 방송인 노홍철씨,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 등 유명인들이 독립서점을 열기 시작하면서 서점 창업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서점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인 ‘서점학교’는 통상 회당 5명 정도가 참가했지만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30~40명씩 몰리며 창업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 같은 열풍에 힘입어 서점 전문인력 양성 과정도 늘고 있다. 서울도서관 등 공공기관은 물론 스토리지북앤필름 등 독립서점에서도 서점 예비 창업자를 위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장 대표는 “지금의 서점 창업자들은 책과 다른 콘텐츠를 결합하는 문화기획자들”이라며 “콘텐츠 연출력을 바탕으로 독자와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내는 서점들이 서점의 진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은영·우영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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