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한국 당구인들에게 뜻하지 않은 낭보가 날아들었다.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이미래(22·한국체대) 선수가 준우승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것도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 사상 최초로 일군 값진 성과였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당구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쾌거였다. 이미래라는 이름 석 자가 ‘한국 당구의 미래’로 불리며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강남의 벤투스클럽에서 여자 3쿠션 세계 랭킹 3위인 이미래 선수를 만나 그의 당구 인생과 포부를 들어봤다.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네덜란드 선수에게 아깝게 패해 준우승을 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한국 여자 3쿠션 역사상 첫 메달이라는 큰 명예를 얻었다.
△사실 큰 기대를 안 했다. 당시만 해도 국제대회 경험이라곤 일본에서 열린 한일3쿠션여성교류전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너무 긴장돼 혼났다. 준결승까지 전승했지만 막상 결승전에 진출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그때 붙었던 선수가 세계 랭킹 1위의 테레서 클롬펜하우어르였다. 초반에는 많이 떨었다. 하프 타임이 지나자 조금씩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한번 해볼 만하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한때 10점까지 격차가 벌어졌는데 결국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0대2로 지고 말았다. 그래도 연습량이 많아 경기를 잘 치렀다고 생각한다. 당구란 자신만의 기준을 얼마나 확고히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큰 대회를 치르며 승패는 나를 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당구도 종류가 많다. 왜 하필이면 3쿠션을 주종목으로 선택했나.
△당구는 경기방식과 용구에 따라 캐럼과 포켓볼·스누커 등 세 가지 종목으로 나뉜다. 우리가 즐겨 치는 3쿠션과 4구 경기가 바로 캐럼 당구다. 국내에는 캐럼 종목이 주종을 이루지만 해외는 반대다. 캐럼은 한국과 유럽, 남미 일부 국가에서만 보급돼 있다. 더욱이 여자 캐럼선수는 흔치 않다. 나를 당구의 길로 이끈 아버지는 캐럼 선수가 다른 종목에 비해 희소성이 있다고 판단해 3쿠션을 선택했던 것 같다.
-여자 1호 당구 체육특기생으로 알고 있다. 대학생활과 선수생활을 같이하자면 어렵지 않나.
△마침 대학에 입학할 때 당구 특기자 전형이 생겨 지원하게 됐다. 입학정원이 남녀 구분 없이 포켓볼 또는 3쿠션 한 명씩이었다. 실기시험에서 남학생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치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 실력이 전혀 뒤지지 않는다며 각오를 다졌다. 학교 수업을 꼬박꼬박 듣고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한다. 방학 때면 하루 6시간씩 훈련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폐쇄성 뇌수두증 진단을 받아 한때 선수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처음에는 몸에 통증이 느껴져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결국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정상적인 훈련에 지장이 있어 걱정하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믿고 꿋꿋이 버텨냈다. 요즘에도 손목 관절이 좋지 않아 틈틈이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역경을 딛고 이겨내야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미래에게 당구란 무엇인가. 당구의 매력을 설명해달라.
△당구는 테이블의 공을 보면서 나만의 도형을 그리는 스포츠다. 무엇보다 각에 대한 느낌이 중요하다.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숫자를 대입하는 운동이다 보니 숫자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상황에 따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당구는 복잡하고 무한한 사고력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바로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당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당구의 길을 다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께, 당점, 스트로크 세기와 스피드에 따라 수천에서 수만 가지의 길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것을 조합하면 경우의 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당구를 잘 치는 선수라지만 언뜻 보면 가냘프다는 느낌이다. 이미래의 강점과 약점은 뭔가.
△주변에서 멘탈이 강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긍정의 힘을 믿는다. 경기를 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숱한 고비를 겪게 된다. 그리고 승부욕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지금까지 당구 큐대를 잡게 만든 것은 바로 타고난 승부욕일지 모르겠다. 견고한 스트로크를 갖추고 내가 원하는 대로 스트로크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비교적 뛰어나다. 그러자면 큐를 꽉 쥐어야 하기 때문에 손목에 무리가 가는 경우도 있다. 당구가 워낙 섬세한 운동이기 때문에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가는 길이 달라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요즘은 근력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천부적 재능을 갖춘 당구 선수라는 얘기도 들린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당구는 생각하는 운동이다. 겉으로는 반복적인 행위로 보이겠지만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머리 쓰는 놀이를 즐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적성과 잘 맞는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굉장히 좋아했다. 만약 공부를 계속했다면 수학과 관련된 학문을 선택했을 듯하다. 당구도 운동이고 운동신경이 좋아야 한다. 시간이 없어 다른 운동을 못했지만 초등학교 때 검도로 금메달을 딴 적도 있다. 원래 활동적인데다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당구가 아니라도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가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줬지만 말이다.
-당구를 잘 치는 비결은 뭔가.
△공의 원리를 알면 알수록 잘 칠 수 있다. 회전과 두께, 그리고 어떤 힘으로 칠 수 있는지 느낌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당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초등학교 6학년부터다. 당구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당구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당구를 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수는 거의 없었다. 굳이 당구를 좋아했다기보다 어찌 보면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에서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어려서부터 좋은 성적을 내면서 조금씩 흥미를 갖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당구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학창시절을 줄곧 당구로 보냈다는 건가.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마음껏 놀아야 했을 텐데.
△평소 활동적이고 운동을 아주 좋아한다. 당구를 배우면서부터 사실상 학창시절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당구의 본고장인 유럽의 이론 원서를 탐독하며 당구 테이블에서 지냈다. 당구 이론을 공부하면서 나만의 기준을 갖게 됐고 주요 고비를 이겨낼 힘이 생겼다. 오직 당구 큐만 붙잡고 사느라 사춘기도 모르고 지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전국체전을 비롯해 각종 프로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당구부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클럽으로 달려가 밤늦게까지 훈련하는 고된 생활을 거쳐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당구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아버님이 선수생활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부모님 간섭이 심하다는 얘기도 있던데.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선수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금까지 아무런 걱정 없이 당구를 칠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 덕택이다.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부모님이 항상 따라다녔다. 주위에서 부모님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고 놀리기도 한다(웃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당구가 싫어져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발전 가능성이 높다며 잠재력을 믿고 다독거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버지는 원칙을 중시하는 분이다. 가족들도 언니를 빼고는 모두 당구를 잘 친다. 아마 내 몸속에 ‘당구 DNA’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당구 선수들이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다고 들었다. 미래 목표는 뭔가.
△일단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 당구를 비롯해 스포츠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교수나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당구 관련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여자 3쿠션 하면 이미래를 저절로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김연아 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뛰어왔다. 그가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자면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정도에 이르지는 못할 것 같다(웃음). 그래도 당구는 선수 수명이 길다. 유럽에서는 선수들이 당구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로서는 마냥 부러운 일이다. 당구가 아직도 하나의 정식 스포츠로 인식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도 아쉽다. 나는 그래도 최근에 벤투스와 스폰서 계약을 맺어 다행이다. 항상 대중의 눈을 즐겁게 해줄 수 있도록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도 열정과 진정성을 갖춘 선수로 오래 뛰고 싶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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