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한상공회의소 강연에서 경제단체가 회원사의 이익만을 위해 뛸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를 위한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기 전에 경제단체 스스로 거래질서를 바로잡아준다면 기업과 정부 모두에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할 곳이 바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이고 경제단체의 선도적인 개혁 노력이 더 절실한 분야도 노동시장이다. 한 나라의 노동시장은 노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성과를 낸다. 노사가 협력하는 기업은 잘되고 불신하고 싸우는 기업은 쇠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우리 노사관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매우 나쁘다. 주로 과격노조 때문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 1987년 이후 30년이 지나서까지 과격노조 탓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마땅한 해법을 내기도 어렵다. 과격노조 사업장에서도 노사협력이 성공한 많은 사례가 있을 뿐 아니라 과격노조와 무능 경영은 동전의 양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꿔 노사혁신을 위해 경제단체들이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보면 어떨까.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한국경총과 전경련은 한국 노사관계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좀 냉정하게 얘기해 이들은 노사관계 환경 전반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보다 한발 앞서 또는 노동계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선제적으로 무엇을 해본 경험이 없다. 과거 개발연대에 노동문제 해결은 늘 정부의 몫이었고 전경련은 경제개발계획 실행의 민간 파트너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경제가 발전하고 노동 문제가 커지자 전경련은 1971년 한국경총을 따로 설립해 독립시켰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전경련과 한국경총은 회원사를 공유해왔고 정책에서 늘 한목소리를 내왔다. 그리고 민주화 시대의 격변을 겪고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도 노사관계에 대한 이들의 정부 의존적인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런 수동적 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제단체와 대비된다. 외국 경제단체는 애초에 노동조합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노사업무가 이들의 주된 기능이다. 최근 노동개혁으로 고용위기를 극복한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더라도 경제단체의 주도적인 혁신 노력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1982년 네덜란드에서 정부와 협력하며 노동계를 설득해 노동개혁의 대타협을 이끌어낸 최대 공로자는 크리스 반 빈 경총 회장이다. 경총 회장이 살던 동네 이름을 따 ‘바세나르협약’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의 하르츠개혁도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민간이 주도하는 형식을 취했다. 페터 하르츠 폭스바겐 노무담당 이사가 노동개혁위원회를 이끌었다는 것은 경제계의 리더십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단체의 혁신사례는 우리에게 보다 직접적인 참고가 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우리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대기업 이익단체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재계의 노무부’로 통하던 닛케이렌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2002년 통합조직으로 출범한 니혼게이단렌은 경제개혁과 고용창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하며 첫 사업으로 ‘워크셰어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추진했다.
노사관계에서 새로운 규제보다는 기업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는 경제단체의 포지티브 캠페인을 강화하는 계기로 한국경총과 전경련의 통합을 추진하면 어떨까. 꼭 일본의 사례를 들어서가 아니라 지금 한국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과학기술과 노사관계에서 크나큰 혁신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새 정부가 새롭게 제기하는 노동과제들에다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법원 판결 등으로 야기된 경영 불확실성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경제단체의 능동적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양대 조직의 통합은 그 자체가 혁신이자 리더십 강화의 계기가 된다. 또 그동안 축적된 양 조직의 정책역량과 재정기반을 대폭 확충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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