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정부·여당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문재인 정부 첫 정기국회를 통해 적폐청산과 개혁과제를 완수하겠다는 계획이 개회 10일 만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은 입지를 넓히는 반전의 기회를 얻게 됐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부터 줄곧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좀처럼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야당은 정기국회 원내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대여투쟁을 예고했던 만큼 이날 본회의를 계기로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여야는 정국 주도권을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정부질문과 국회 상임위원회 가동, 국정감사 등 정기국회 주요 일정들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여야가 감정싸움에 빠질 경우 정국은 다시 공회전만 거듭할 수 있다.
이날 오전만 해도 여야 원내대표 간 의견이 갈려 김 후보자 표결은 주 후반에 이뤄질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결정하면서 표결 처리는 갑작스레 이뤄졌다. 여야 지도부는 표결단속을 위해 당력을 총동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20명 전원 참석했고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의원들 가운데 불참자는 6명에 불과했다. 여당은 가결을 자신했지만 2표가 부족해 부결됐다.
여당 원내지도부는 지난 추가경정예산안 본회의 처리 논란에 이어 또다시 표 계산에 오점을 남겨 상처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결 직후 바로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고”라며 부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국당 의원들은 부결 결과가 나오자 본회의장에서 환호했다. 더욱이 정기국회 일정에 복귀한 첫날 여당 행보에 제동을 걸어 대여투쟁 기조는 고조된 분위기다.
주요 현안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국민의당도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표결 처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당은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고 말했고 박지원 전 대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다만 야당이 김 후보자 표결 처리를 미뤄 사법부 공백 장기화를 초래했고 문재인 정부가 아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야당에 대한 비난 여론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 점을 의식한 듯 야당을 겨냥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추 대표는 “오늘 이 부결사태는 명백히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인사에 대해서 당리당략적인 그런 판단을 한 집단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