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저녁 식사 시간에 느닷없이 분위기를 망치는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린다. 상사의 업무지시 메시지다. 못 본 척 넘기려다 다음 날 깨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최근 스마트 기기의 사용 증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업무환경이 조성됐다. 단체 카톡방을 통한 상사의 지시는 우리를 ‘SNS 사무실’이라는 또 다른 족쇄로 옭아맨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업무지시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프랑스는 노동자의 여가 보장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올해부터 새 노동법을 시행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퇴근 후 업무지시를 받지 않을 권리를 노사가 협의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독일의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은 업무시간이 끝나면 업무용 e메일 기능도 함께 종료된다.
우리나라도 최근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업무시간 외에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회사 규정으로 정하면 될 일을 굳이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대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에서 해방돼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6일 퇴근 후 SNS 등을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업무지시를 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자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일명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다. 이 법안에는 정당한 사유에 따른 지시였다 하더라도 연장근무로 인정하고 보상해줘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퇴근 후 업무지시는 일의 연속성 또는 직종·업무에 따라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모든 사업장에 카톡 금지법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근무여건에 맞게 회사마다 자발적 윤리경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톡 금지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8%가 ‘카톡 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해당 법안이 업무현장에서 정착되기는 어렵다’는 응답이 66%에 달했다. 카톡 금지법은 누구나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고 필요한 제도임이 틀림없지만 직장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다.
육아휴직제도를 봐도 그렇다. 올해 1·4분기 민간기업의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은 10%에 그쳤다. 물론 생계비 부담 탓도 있겠지만 직장 내에서 눈치가 보여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직장생활에 매달려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카톡 금지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적 분위기가 아닐까.
누구나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고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사회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카톡 금지법이 발의된 배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직원들 간에 더 배려하고 존중하는 직장문화가 정착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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